2012. 10. 13. 17:00ㆍ☆- 문학과 창작 -☆/소설이 걷다
“훈아! 그동안 왜 전화 안 했어? ”
“혹시 나에게 화가 났던 거야? ”
미화는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동안 조금 아팠었어.”
“어머! 어디가?”
“감기였나 봐.”
“너. 지난번에 비 맞고선 그리되었구나?”
“맞아. 그런가 봐.”
“그래도 전화라도 잠깐 해주지.”
“내가 얼마나 걱정했었는지 몰라. 네가 통 전화도 없어서…”
미화는 약간 새침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많이 아팠었어.”
“그래? 그럼, 지금은 괜찮은 거야?”
나를 쳐다보는 미화의 맑은 눈에 물기가 살짝 어렸다. 내 가슴은 또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미화의 얼굴을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떨리고 두 다리에 기운이 빠지는 것과는 달리, 가슴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욕망이 용솟음쳤다. 우리는 걸었다. 걷다 보니 마포를 지나 여의도 다리가 보였다. 다리 위로는 아직도 많은 차가 지나다니고, 다리 아래로는 무심한 강물만 흐르고 있다. 헤어질 무렵에 미화는 테이프 한 개를 내밀었다. 예전에 미화가 제목도 모르는 음악을 들려주었었는데 내가 노래가 좋다고 한 적이 있었다. 미화는 잊지 않고 그 곡을 한 면에 몽땅 연속으로 녹음하고 다른 면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곡들을 녹음했다고 하였다. 살포시 웃으며 건네주는 미화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어쩐지 도리어 슬퍼 보였다.
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누가 인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했었던가. 그리도 길고 무더웠던 여름도, 결국은 지나가고 말았다. 이즈음 나의 화두는 회자정리(會者定離)에 머물고 있었다. 모든 사물이 소멸하고 생성하는 원리는 자연의 법칙이라 모든 만남과 헤어짐도 결국은 때가 있다는 것이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만해 한 용운님도 자신의 시에서 이처럼 말씀하셨다. 무엇인가 몰두하여야 하였다. 어쭙잖게 종교의 본질을 논하고 인생의 의미를 구했다. 헤르만 헤세를 읽고 괴테를 읽고, 그리고 니체를 읽었다. 그러나 둘러싼 의식의 꿈속에서, 나를 감싼 현실의 벽이 어쩐지 허전하고 쓸쓸하기만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죽음의 탐구가 역설적으로 나에겐 사치처럼 다가왔다.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 승 아제 모지 사바하’ 영원한 깨달음의 언덕을 찾아 헤맸다. 미화가 건네준 음악은 나에겐 위안이자 도리어 슬픔이었다. 드럼과 키보드의 장엄한 사운드가 조화롭지만, 그렇게 ‘Epitaph’는 지속적으로 다가와 나를 우울하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이 감정은 마치 상극의 관계가 순행의 이치에서는 결코 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오히려 상생하듯이 상대를 잡아주고 또한 이끌었다.
어느 날 미화와 약속을 했다. 가을 들판에 핀 하늘하늘한 코스모스를 보러 가자고. 마침 미화가 다니는 성당 근처에 좋은 곳을 보아 두었단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미화가 알려준 데로 개봉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만나기로 약속한 성당 앞에는 미화가 벌써 나와 있었다. 미화도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초록색 주름치마에,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양 갈래 진 머리가 제법 길었다. 우린 서부 순환 도로를 지나 인천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길 양옆으로는 분홍색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달려가는 차들의 경적소리만 크게 울렸다. 저 멀리 서쪽 하늘에 떠오른 초승달을 바라보며 우리는 걸었다. 어느덧 미화는 약간 지쳐 보였다. 우린 잠시 길옆에 앉아서 말없이 도로 앞쪽 완만한 산등성이 사이로 짙어만 가는 어둠의 그늘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때 미화가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훈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죽는 방법을 아니?”
“글쎄…, 죽는 것 자체가 예쁜 것은 아니잖아?”
“아냐. 그래도 예쁘게 죽는 방법이 있어.”
미화는 고집스레 죽음과 아름다움을 연결 지려고 하였다.
“어떻게 죽는 것이 예쁜 건데?”
“먼저 욕조에다 물을 가득 담고서, 그 안에 들어가 앉는 거야.”
“그런 다음에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곤 물속에다 손가락을 담그고 있으면…, 서서히 피가 다 빠져나가겠지?”
“피가 다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 얼굴이 아마 창백해 질 거야. 그러면 얼굴이 아주 예쁘게 보인다는데.”
순수하고도 진지한 미화의 말 속엔 어쩐지 슬픔만이 배어 있었다. 미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미화가 가만히 나의 손을 잡으며 나를 불렀다.
“훈아!”
미화의 미세한 떨림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미화야!”
나는 미화를 안았다. 방망이질 치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커져만 가고 안겨 있는 미화의 작고 가녀린 몸도 심하게 떨고 있었다. 미화의 검은 머리칼에선 풋풋한 풀냄새가 났다.
‘시지프스는 산 밑자락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바위를 영원히 굴려 올려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존재이다. 그는 매일 온갖 노력을 기울여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까지 힘겹게 굴려서 올린다. 하지만, 그가 힘들여 올린 바위는 정상에 다다르자마자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 바위는 결코, 산 정상 위에 올려진 채 고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지프스는 할 수 없이 다시 산밑으로 내려가서 처음과 마찬가지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리고자 애를 쓴다. 물론 결과는 항상 마찬가지일 뿐이다.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끌어올리고자 산밑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산 정상 위에 바위를 올려놓으려는 그의 소망은 절대 달성되지 않는다. 시지프스의 노력은 슬프게도 항상 무위로 돌아간다.’
-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 중에서.
왜 지금 시지프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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