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산책012
2012. 10. 21. 17:06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작품
모나리자 (Mona Lisa)
목판 유채 77 x 53 cm, 1503-06, 루브르 미술관
이 작품의 주인공은 피렌체의 프란체스코 디 바르톨로메오 디 자노비 델
지오콘도의 아내를 그린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식 이름이 모나 리자 게라르디였던
그녀는 1479년 태생으로 지오콘도의 아내가 된 후 지오콘다라고 불렸다.
지오콘다는 왼손을 의자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을 그 위에 겹쳐 정삼각형의 구도로
묘사되어 있고, 배경으로 대자연의 풍경에 의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나리자는 1911년 도난사건으로 미술계에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2년 뒤 피렌체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레오나르도는 리자의 머리에 3차원적 공간감을 부여하면서 놀라운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곱슬머리를 덮고 있는 투명한 베일도 그 중 하나이다.
암굴의 성모 (The Virgin of the Rocks)
1503-1506년, 목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루브르의 작품에서는 화면 오른쪽의 천사 가브리엘이 오른손을 내밀고
아기 요한이 기도하는 어린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데 반해
이 그림에서는 그 손짓이 생략되어 있으며, 후광이 천사를 제외한 인물들의
머리뒤로 그려져 있는점이 루브르의 작품과 다르다.
런던의 작품과 파리의 작품 중에 어느쪽이 원작이냐는 점이 논란이 되었으나
파리 루브르의 것이 원작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레오나르도는 1483년 4월 25일에 산 프란체스코 성당의 제단화로서
이 작품을 처음으로 그렸다. 그러나 성당과의 불화로 인해 처음에 그린
그림은 성당에 들어가지 못하였다가 프랑스 왕실의 소유가 되었으며
이것이 현재 루브르에 있는 암굴의 성모이다.
그 후 성당과의 화해가 이루어진 후에 같은 주제로 다시 그린 그림이
이 작품이며 레오나르도가 밑그림을 그리고 한 제자가 대부분을 그려서
1508년에 완성되었음이 문헌에 의해 밝혀졌다.
이 작품은 18세기 말엽 밀라노의 성당에서 반출되어진 후 몇사람을 거쳐
1880년에 9천 파운드로 런던 국립 회화관 내셔널 갤러리 소유로 되었다.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1498년, 템페라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수도원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서 그린 최후의 만찬은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아직도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걸작이다.
1495∼1498년 동안에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에 그려진
이 세계적 명작은 완성 직후 부터 손상되기 시작했다.
문제의 근원은 습기로 인해 썩기 시작한 벽을 보수 공사하면서
원작을 많이 손상시킨데에 있었다. 1556년에 출판한 미술가 열전이라는
책에서 바사리는 그림이 너무 많이 훼손되어 희미한 매체 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고 쓰고 있다.
1796년에는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 군대가 최후의 만찬이 있는 방을
마굿간으로 사용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공중 폭격의 유탄에 맞아
식당 자체가 무너졌으나 사려깊은 수도원장이 쌓아놓은 모래 가마니 덕분에
명작의 벽화는 기적적으로 파괴를 면했다.
그 후 보수작업으로 1943년에 벽에서 떼어내어지고 캔버스에 옮겨져 습기와
차단되어졌으며 1977년 이후에는 하루에 한 평방 인치씩만 작업하는
보수작업과 청소작업을 단행하여 5백 년 동안 쌓인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다른 화가가 덧칠한 오일등을 깨끗이 청소함으로써 원작의 화려한 색과
견실하고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개성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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