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또 다른 시작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
지나간 것은 과거가 되어 먼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육신으로 떨어져 간 사람을 만나지 못해 그리워하며 아쉬워한다. 그러나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었던 일이 있었던가. 다만, 편히 보내주고 가슴에 회한만 쌓지 않기를 바란다. 내일은 멀리 아득할 뿐. 보이지 않는 차안과 피안의 경계는 뚜렷하다.
한 해 동안 한 것이 없다고 결코 후회하지 마라. 무엇을 이룬다고 만족할 것이 있던가. 세월에 떠밀려서 는 것은 흰머리뿐. 결국, 죽을 때에도 자신에게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이루고 이루어도 돌이켜 보면 언제나 후회만이 남았다.
오늘이 괴롭다고 괴로워 마라. 죽기보다 힘든 것이 죽을 결심인고로 오히려 사는 것이 죽기보다는 쉽지 않겠나. 다만, 남과 비교해 스스로 족쇄를 채우지 말기를. 올려다보느라 고개만 아플 뿐 내려다보는 것이 실제로 편하다. 결국, 무엇인가. 기준은 세상에 없다. 판단은 자신의 몫으로 초라하다고 여기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자괴감만 남는다.
스스로 이유를 꾸미지 마라. 남을 미워해서 돌아올 것은 증오와 분노만이 용광로처럼 끓고 타올라 자신을 태워죽인다. 남을 비판하여 험담하고 남을 시기하고 모략하여 끌어내리려 하지 마라. 그런다고 자신이 올라가겠는가. 허망한 착각이고 자신의 허장성세를 쌓는 것처럼 부질없다.
새해가 온다고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날들은 다만 오늘의 연속일 뿐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희망찬 미래이다. 덧없는 것에 미련을 품지 말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이웃과 자신의 국가와 온 지구 사람과 온 지구의 동식물과 자연을 사랑하자. 사랑의 바탕은 '함께한다'는 의미라고 누군가 말했다. 결코, 세상에서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처럼 행동하여 서로 공멸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10년 전 9·11 테러 때 희생당한 희생자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절절한 사랑이다. 물론 가족에 대한 사랑이지만 그들의 통화내용은 의연하고 분명했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아. 그런데 난 아마 살 수 없을 것 같아. 여보 사랑해. 아기를 잘 부탁해.", "엄마, 우리 납치당했어. 엄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거창하게 새해 결심을 하지 마라. 새날은 기적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오늘부터 서로를 사랑하자. 사랑은 결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바로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모든 일이 성사된다. "자식이 떡을 원할 때에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돌을 주겠는가."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해 보자.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만을 생각하지 말자. 조금씩 포기하며 살자. 그러면 누가 누구에게 욕을 하겠는가. 욕먹을 놈은 바로 자신일 뿐이다.
새 옷 입는 법 - 문정희
새로 핀 꽃에서 어머니를 만나네
나에게는 아직 어린아이가 많다네
꽃들이 옷 입는 법을 가르쳐주면
새 옷 입고 사운사운 시를 쓰겠네
이 도시가 악어들의 이빨로 가득해도
오늘은 이만하면 살 만하다네
우리는 모두 고향을 버리고 온 새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네
아침이 또 찾아왔잖아
새 길이 내 앞에 누워 있잖아
고통과 쓸쓸함이 따라다니지만
부드러운 비가 어깨를 감싸주는 날도 있지
새로 또 꽃은 피어
눈부시게 옷 입는 법을 가르쳐주고
새들은 그의 혀로 시 짓는 법을 들려주네
나무들은 몸으로 춤을 보여주네
아무래도 나는 사랑을 앓고 있는 것 같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