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바리스타가 된 그녀 - 영화 가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 '가비'의 소식이 들려와 기대감을 부풀게 하고 있다. '가비'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이야기를 그린 소설 '노서아 가비'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흥미로운 소재로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고 또한, 고종 독살 음모를 다룬 역사적 사건에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가미된 독창적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여기서 노서아 가비는 러시아 커피라는 뜻이다.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난 따냐는 청나라 역행 길에 따라간 아버지가 천자의 하사품을 훔쳐 달아나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다소 황당한 누명을 뒤집어쓴 죄인 자식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열아홉의 나이로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떠난다. 그녀는 살기 위해 그림 위조 사기꾼인 칭 할아범과 동업하여 가짜 그림을 팔기도 하고 광대한 러시아 숲을 유럽 귀족에게 팔아치우는 사기꾼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 그녀는 그런 와중에 만나게 된 연인 이반을 따라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고 나아가 고종의 바리스타가 되었다. 대한제국 시대의 격변하는 정치 소용돌이의 현장 속에서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관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와 협잡의 세계를 그녀는 온몸으로 겪게 된다.
작가 김탁환은 '불멸의 이순신'으로 유명하다. 책보다는 드라마로 더욱 알려졌는데 또 다른 소설 '열녀문의 비밀'은 영화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로 만들어져 많은 관객을 끌었다. 그 외에도 그는 계속 다양한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특히 '노서아 가비'는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고종 독살 음모사건의 주모자인 김홍륙의 일화를 읽고 영감을 받아 썼다고 한다. 김홍륙은 러시아어에 능통하여 아관파천 당시 엄청난 부와 권력을 잡았던 인물인데 거액 착복 혐의로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자 공홍식과 서양 요리사 김종화를 꾀어 고종이 즐기는 노서아 가비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었다가 발각된 사건의 주모자이다. 당시 고종은 맛이 좋지 않다며 아주 소량으로 두 세 번 마셨기에 독살을 피할 수 있었고 같이 마셨던 황태자인 순종은 거의 반 잔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실제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유쾌하고 매력적인 여자 사기꾼을 창조하였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언제 전래하였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다만 1880년대 이후 들어왔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고종은 유명한 커피 애호가였다고 한다. 초대 주한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독일 여성 손탁은 아관파천 당시에도 관련된 인물로 알려졌는데 손탁이 고종에게 커피를 소개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고종은 서소문 정동(이화 여고 자리)에 그녀를 위해 양옥 건물을 지어주었고 이것이 최초의 서구식 호텔로 알려진 손탁호텔이다. 이 호텔에 러일전쟁을 취재하였던 마크 트웨인과 젊은 시절의 윈스턴 처칠도 묶었다고 전해진다.
책에 나오는 13가지 커피에 대한 정의가 매우 독특하고 감미로워서 눈길을 끈다.
커피는 외로워 마라 외로워 마라, 속삭임이다.
커피는 돌이킬 수 없이 아득한 질주다.
커피는 언제나 첫사랑이다.
커피는 달고 쓰고 차고 뜨거운 기억의 소용돌이다.
커피는 검은 히드라다.
커피는 두근두근, 기대다.
커피는 아내 같은 애인이다.
커피는 맛보지 않은 욕심이며 가지 않은 여행이다.
커피는 따로 또 같은 미소다.
커피는 오직 이것뿐! 이라는 착각이다.
커피는 흔들림이다.
커피는 아름다운 독이다.
커피는 끝나지 않은 당신의 이야기다.
주진모와 김소연이 열연하는 영화 '가비'는 시종일관 경쾌하게 진행되는 원작만큼이나 잘 짜여 우리에게 흥미롭게 다가올지 무척 기대된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상반된 맛을 동시에 품고 있는 커피, 그러나 어우러져 중독성의 환상적 맛을 내는 커피의 이미지처럼 따냐의 역활에 걸맞은 김소연의 연기를 빨리 접해 보고 싶다.
소설 속에서 고종과 따냐의 대화는 압축적이면서도 강렬하고 또한, 인생의 의미와 상징하는 그 무엇이 있다. 어쩌면 커피 이야기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나는 과정에 우리 삶의 의미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려는 작가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일까?
외롭지 않더냐? 전하의 하문은 짧고 강렬했다. 외롭지 않더냐, 외롭지 않더냐, 외롭지 않더냐...? 속으로 여섯 글자를 되뇌었지만 나는 즉답을 못했다.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여자라서가 아니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이면 외로운 법이다. 전하께서는 커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스스로 답하셨다. 내가 노서아 가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말이다. 이 쓴맛이 꼭 내 마음을 닮아서이니라.
(음원제공 YouTube : Sergei Trofanov - Russian Med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