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틸롭 밸리의 바람 속에 떨고 있는 파피꽃
광야에서 맞이한 것은 다만 거친 바람뿐이었다. 살을 에는 날카로운 칼바람은 어데 가고 둔중한 바람만이 어깃장 놓듯 등을 떠밀어 메마른 황무지에 비틀대며 홀로 섰다.
이곳은 언제나 거센 바람이 매섭다. 완만한 능선과 능선 사이로 불어와 벌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고개를 넘어 하늘 위 하얀 구름에 닿는다.
야트막한 둔덕 아래 널따랗게 일렁이는 오렌지 물결은, 아직 때가 아닌 듯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텀블위즈(Tumbleweeds)만이 길가에 정처 없이 떠돌았다.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덧 과거로 돌아가라! 귓가에 살며시 이른다.
열여덟의 감성은 이제 메마른 감정만 덧칠한 늙수그레한 육신을 비웃는데 과연 돌아갈 수 없는 과거는 언제나 허무하다. 시간은 수많은 영욕으로 점철되어 강물처럼 흘렀다. 남은 것은 오로지 초라한 영혼과 아쉽게도 흐릿한 추억뿐인 것을.
바라보니 지나온 길은 저 멀리 아득함만 가득하다.
산 아래 자리한 외딴 집 근처에는 덩그러니 바람개비 하나만 외롭게 돌고 있고 아직도 세찬 바람은 맞서듯 솟은 나무만 이리저리 괴롭히며 거세다. 쓸쓸하게 돌아선 발길이 아쉬워 들어선 샛길 가에 떨고 있는 파피꽃이 반갑기 그지없다.
어찌 인생이 감동만이 전부이겠는가.
하여 새털구름보다 많은 바람과 바람 속의 쓰디쓴 좌절이 하늘을 뒤덮을 때면 주체할 수 없는 괴로움은 땅 위로 올라선 발아래로 점점 가라앉는다.
바라보이는 피사체가 멀게 느껴져도 이 삶이 다하기 전에 절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너나없이 부자연스럽게 자연 속의 한점인 것을.
어느덧 무심한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서쪽 하늘가의 노을만 검붉게 물들어갈 때 지나가는 갈까마귀떼 어지러이 날아 스산한 울음소리 산마루를 힘겹게 넘는다. 돌아가는 가슴 한구석에는 어찌할 수 없는 바람만이 휘돌아 쳐 스러졌다.
(음원제공 YouTube : 린애 - 이별후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