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이야기 -♧/영화와 사진

건축학 개론과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추억

달빛산책012 2012. 10. 15. 22:00

 

 

건축과 사랑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집을 짓는 과정과 사랑하는 과정은 흥미롭게도 닮았다고 주장하는 '건축학 개론'을 보노라니 지난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어느덧 기억의 한 귀퉁이에서 떠오른다.

 

그녀가 살고 싶은 집을 잘 지어주려면 그녀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가슴으로 깨달아야만 하니 꽤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다.

 

창문을 가슴높이로 낼 것인가 아니면 배꼽높이로 낼 것인가 등 순간순간 어려운 선택의 연속이다. 그렇게 벽돌을 한 장씩 올리듯 둘은 옛 기억을 되살려 낸다. 정겹고 아름다웠던 기억들도 있을 테고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프고 괴로웠던 순간들도 물론 있었을 테다.

 

그렇지만 둘은 미완의 기억 속에 마지막 벽돌 한 개를 밀어 넣어 비로소 한 시절을 완성한다. 완성된 시절은 추억으로 기념될 것이고, 새로운 집은 둘만의 설레는 내일을 꿈꾸게 할 것이다. 연출가는 이렇게 영화의 밑그림을 그렸다.

 

 

첫사랑의 그녀가 다시 찾아온다. 과거 ‘첫사랑’의 기억으로 얽혀 있던 두 남녀가 15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 추억을 완성한다. “어떤 사람의 집을 가보면 어느덧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듯 집을 지으면서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사랑의 구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는 감독의 말이 영화 속 주인공 승민과 서연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실제 눈으로는 화면을 보지만 모두 먼 기억의 끝자락 속을 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함께 집을 지어 가는 동안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고 차곡차곡 현재의 감정을 쌓아 가는 과정을 절묘하게 접목했다. 바다가 내려 보이는 제주의 평범한 집에서 잠들듯 편안하게 둘만의 아름다운 내일을 꿈꾼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루지 못했기에 아련하게 기억 속에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루어졌다면 그렇게 소중하게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현실의 때가 타고 몸은 늙어가도 언제나 첫사랑의 기억만은 늘 새롭다.

 

첫사랑의 그녀 머릿결에서는 항상 달콤한 샴푸냄새가 났다. 아니 비누냄새라도 좋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날 그녀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기다리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가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떠나갔다. 그렇게 첫사랑의 기억은 눈과 함께 가슴 속에 남았다.

 

 

라일락 꽃잎이 아지랑이처럼 아른하게 교정에 피어오르던 봄날에도 아카시아 꽃잎이 거리에 휘날리며 눈처럼 쌓이던 여름날에도 코스모스 분홍 꽃이 슬프게도 만발한 도로를 걷던 가을날에도 언제나 그녀가 떠났던 눈이 펑펑 내리는 그 겨울날이었다.

 

그렇게 첫사랑은 가슴설레게 다가와 아련한 슬픔만을 남긴 채 훌쩍 기억의 한구석으로 사라졌다. 근정전 연못가에 새초롬하게 피어오른 연꽃 위로 한줄기 쏟아지던 여름날의 소나기와 함께 가슴 뛰던 설렘을 덤으로 남기고. 



 

(음원제공 YouTube : 기억의 습작 _ 전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