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산책012 2012. 10. 15. 22:30

 

 

 

갈까마귀

 

춤추듯 너울거리던 노을 빛살이 힘겹게 산마루에 걸리면
떼 지어 날아가던 갈까마귀 울음소리 걸음을 어지럽히고 
재넘이 어느새 휘돌아 쳐 이제 돌아갈 곳 없는데

 

무심코 돌아선 발길은 지나감이 아쉬워 들어선 샛길로
앞마당에 찢어진 바람개비 우두커니 돌고 있는 비켜선 외딴 집
무리에서 떨어진 갈까마귀 한 마리 나뭇가지 위에 앉아 무심히 내려본다.

 

광야에서 마주 대한 것은 다만 색바람만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메마른 음성 너는 누구냐
어깃장 놓듯 되돌아선 그 길은 그러나 등 떠민 홍해의 갈라진 파도는 넘치고

 

야트막한 둔덕 아래 치열하게 떠돌던 텀블위즈 가로지르던 높바람이 불을 놓는다.
비로소 무릎 꿇고 이제 뜻대로 하소서.
소리 없어 고개 들어 바라보는 그곳은 새털구름에 가리어진 좁다란 하늘만

 

흐릿해진 기억도 어느덧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 속에 묻혀버리고
다만 저 멀리 일렁이는 가나안 땅은 언제나 눈앞에서 요동질을 쳐댔다.
오로지 기대고 싶은 그이는 그래도 대답없이 너는 도대체 누구냐

 

오로지 눈물만이 전부일까마는
까마득히 갈까마귀 깃털만 흩날리는 아득한 사위로
아마도 벗어날 수 없는 부조화한 자연의 한 점인 것을

 

 

 

 

어둠이 빨아들인 붉음도 푸름도 산길에 떨어지고
높이 올랐던 갈까마귀 정상 위 바위산 뒤로 숨어버렸다.
어슴푸레 비추던 너울지는 석양이 다만 나아갈 길을 밝히고


지나온 길은 가려져 후회가 되어 먼 기억 속으로 흩어졌지만
이제 돌이킬 수는 없는 것 다만 무엇을 이룬다고 만족할 것이 있던가.
고요한 사위는 어둠처럼 모든 색을 두텁게 하고

 

산새와 산짐승도 이미 깊은 잠이 들었다.
발끝을 내려다보는 것이 편하다고 고개를 들지 않을 수는 없다고
스스로 회개한들 그이가 속죄하여 주겠느냐

 

하늘과 맞닿은 봉우리에는 빛보다 말씀이 먼저였느니라.
이슬 젖은 밤에 아롱지며 떨어지던 아칸서스 잎에
여전히 달고 있는 메마른 음성 너는 누구냐

 

살짝 여물지 못한 골짜기 그늘에서 살얼음 내를 건넌다.
떠나온 자리는 땅거미 어우러진 들녘이라도 좋았고
오렌지 향내 물큰한 우거진 숲이라도 좋았다.

 

넓등글한 산마루 사이로 내려앉은 하늘이 있다.
지난날 어기대며 검잡던 창가로 스며들던 살바람마저 차마 머무를 수 없어 너를 닮아가는 나에게 묻어난다.
어쩌면 끝은 새로운 시작이고 또 다른 너의 이름이다.





(음원제공 YouTube : Amy Sky - Soled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