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이야기 -♧/역사와 예술
잃어버린 산타를 찾아서
달빛산책012
2012. 11. 19. 00:30
지금은 사라진 산타 마을을 찾아 나섰다.
오래전에 처음 가보았던 산타 빌리지의 아련한 기억이 있다. 산 위에는 눈이 내리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환히 불을 밝히던 산타 마을의 아름다운 환상은 지금도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수년 전 그곳을 찾았을 때 주변은 땅거미가 지고 있던 초저녁 밤이었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날씨도 무척이나 쌀쌀했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서자 화려한 장식과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겼다. 빨간 코를 한 루돌프 사슴이 앞에서 끌고 있는 마차 위에는 산타가 타고 있었고 마차 앞에서 겨우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겨울이 성큼 와버린 마을의 모습은 평화롭고 따뜻해 보였다. 길가에 있던 작은 집의 유리창 너머로 참나무가 타고 있던 벽난로 옆에는 커다란 빨간 양말이 앙증맞게 걸려 있었다.
디즈니랜드보다 앞선 1959년에 San Bernardino Mountains 정상에 있는 Lake Arrowhead 근처에는 아름다운 Santa's Village가 들어섰다.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선사하였고 관광객들에게는 뜻깊은 볼거리를 주었던 산타 마을은 아쉽게도 2008년도에 문을 닫고 말았다. 겨울이면 이곳을 보러 일부러 멀리서도 찾아오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무척 크다. 하지만 지금도 Lake Arrowhead를 찾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또한, 이곳이 빅 베어를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수시로 많은 차들이 지나다닌다.
Lake Arrowhead를 가던 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산에 올라가자 산 위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 산허리를 돌아 쭉 이어진 도로 위로 깔린 안개는 도통 사라질 줄 몰랐고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노랗게 물든 나뭇잎도 안개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비도 간간이 뿌리며 지나가고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빨간 단풍잎이 산 아래로 구른다.
헤르만 헤세의 '안갯속에서'라는 시가 저절로 떠올랐다.
안갯속을 혼자 거닐면 정말 이상하다.
덩굴과 돌은 모두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덩굴과 돌은 모두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헤세가 이렇게 노래했듯이 안갯속에서는 모두가 혼자인 것 같다.
산마루에 안개가 자욱하다.
노랗게 물든 나무가 안개에 가렸다.
뜨겁던 태양이 온종일 지면을 달구던 여름도 지나갔다. 계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리 없이 바뀌어 간다. 우리 삶도 달라지는 계절을 따라 굴곡과 변화를 맞는다. 새로운 희망에 부풀던 따뜻한 봄날이 있다면 불볕더위에 시달리고 거센 태풍에 날려가는 시련의 여름이 있다. 결실을 보는 풍성한 가을과 안정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겨울도 찾아든다.
그러나 어찌 미풍에 돛을 단 순탄한 인생만이 세상의 전부일까. 폭풍에 뿌리째 뽑힌 나무는 벌판에 버려져 뒹굴며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시들어 간다. 나무는 눈 내리는 겨울이 홀연히 찾아들까 봐 가을밤 서리에 남몰래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가을이 마냥 풍요롭고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똑같은 햇볕을 받고 자란 나무도 저마다 키가 다르다. 땅속의 물을 빨아들이고 가지로 실어나르는 나무의 남다른 능력과 수고로움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는가? 그러나 주변의 키 크고 덩치 있는 나무에 가려서 자라지 못하고 말라버린 작은 나무에게는 분명 공평한 처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말이 없다.
가을 호수의 정경이 아름답다.
호수에 도착했다. 모양이 화살촉과 비슷하다는 Lake Arrowhead는 호수 주위로 아름다운 별장과 집들로 가득 찼다. 호수의 동서 길이가 약 2.5마일에 이른다고 한다. 꽤 커다란 호수다. 호수를 운항하는 유람선도 있다고 들었는데 비가 오고 쌀쌀한 날씨 탓인지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숙박업소를 지나다 자쿠지(Jacuzzi) 완비라는 문구가 특이하게 눈에 띄었다. 이곳은 원래 과거에 암반수와 온천으로 유명하기도 하였다.
Lake Arrowhead Village의 모습
가는 길은 210 E로 가다가 18번을 타거나 10 E로 가다 빅 베어 가는 380을 탔다가 18번으로 갈아타면 된다. LA에서는 약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돌아오면서 웬일인지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과 마을이 있었다. 이곳 산타 마을에도 눈은 내릴 것이다. 비록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마음속에 자리한 산타 마을은 영원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곳을 둘러봤지만 젊은 시절에는 동적이며 볼 것 많은 여행지를 찾았고 또 놀이문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정적이며 아름답고 공기 맑은 곳을 찾게 되고 또 음식문화에도 집착하게 되었다. 내려오며 보던 가을 산은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그러나 불어오는 찬바람에 밑바닥 가슴 한쪽으로 지나가는 시리고 쓸쓸한 감정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