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떨어지는 것은 별똥별만이 아니다.

달빛산책012 2012. 11. 25. 20:00

 

 

 

 

칠흑처럼 어두운 산길을 조심스럽게 어느덧 3,000피트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주위는 아직도 어둡다.

어쩌면 이곳이 정상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희미하지만 앞쪽으로 바위산의 형상도 어슴푸레 보인다.

달려온 길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나아갈 길은 멀기만 하다.

 

마침 가로등 하나가 외롭게 떨고 있고 자세히 보니 불빛 아래로 파킹랏 사인 판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발길을 그리로 향하였다.

시간도 늦었고 인적도 끊긴 산중에서 이리저리 헤매느니, 일단 그곳에 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작정하였다. 마을에서 늦게 출발하여 올라올 때 입구에는 이미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지도도 취하지 못했기에 초행길에 어디부터 가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였다.

캠프 그라운드는 찾을 수 없고 아무래도 파킹랏에서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하겠다.

 

파킹랏으로 들어서니 주차된 차량은 한 대도 없고 어둠 속에 주위는 고요하기만 하다.

산새와 산짐승도 이미 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가끔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만 싸늘하다.

시트를 뒤로 젖힌 채 담요를 꺼내서 덮고 잠을 청해 보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조슈아 트리의 가지들이 무서운 짐승 같기도 하고

악마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하며 마치 달려들 듯하다.

차가 서 있는 앞쪽으로는 절벽이 있는지도 모른다.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천애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지도 몰라 나가기 두렵다.         

 

몸이 떨려온다.

밤이 깊어갈수록 산중 기온은 점점 내려간다.

얇은 담요 한 장으로 버티기에는 무리다.

잡념은 늘어가고 무서움은 깊어간다.

혼자 있다는 외로움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무서움으로 바뀌어 나온다.

깊고 높은 황무지 산속에 나만 홀로 깨어 있다는 외로움은 그래서 처절하기만 하다. 

 

조심스레 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조슈아 트리가 성큼 다가서 있다.

얼핏 보면 커다란 선인장 같기도 한 나무는 땅속으로 11미터 이상의 뿌리를 박고 산다.

독특하고 강한 생명력의 뿌리는 삶의 원천인 물을 찾아 척박한 황무지의 이곳저곳을 헤맬 것이다.

그렇기에 나무는 일 년에 3.8센티미터밖에 자라지 못한다.

애초부터 나무는 타고난 토양이 험한 세상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도와줄 이 전혀 없는,

오직 거친 바람만이 매서운 허허벌판에서 천둥벌거숭이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그렇게 천 년을 산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굵은 가지를 맺고 푸른 잎을 띄우며 오직 감사함만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하다. 

북쪽으로 향한 하늘은 두 개의 산봉우리 사이로 낮게 내려앉았다.

지상에서 많이 올라와서 그런 것일까?

하늘이 손만 뻗으면 닿을 듯 무척이나 가깝다.

북두칠성이 보이고 국자 손잡이 쪽으로 뻗어 나간 끝자리에 북극성이 우뚝 자리하고 있는데

그 연장 선상에는 카시오페이아 자리가 선명하게도 W자 모양을 하고 있다.

늘 북쪽 하늘을 바라보면 멀게만 보이던 이 별자리들이 어쩌면 이리도 가깝게 모여 있을까.

정말이지 놀랍고 신비한 체험이었다. 

 

시간을 보니 자정이 살짝 넘었다.

하늘과 봉우리와 내가 비로소 한몸이 되었다.

바람도 잠시 멎은 이 밤에 가까운 하늘에는 별이 찬란히 빛나고 있고

하늘 아래 내려앉은 산봉우리에 내가 서 있다.

휘황찬란한 별 사이로 갑작스레 별똥별 하나가 긴 꼬리를 그리며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

양팔을 높이든 채 하늘에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여호수아의 검은 실루엣처럼

나도 그 순간 하늘로 올라 양팔을 치켜들고 찬미의 기도를 드렸다.

 

산에 오르기 전 왼쪽 귀에서 기분 나쁘게 경미한 귀울림 증상이 계속 있었다.

한방에서는 이명 증상이라고 하는데 보통 신허나 신정 쇠약이 원인이라고 한다.

양방에서는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다.

한 마디로 나이 들어 쇠약해졌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순간 왼쪽 귀에서 이명 증상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오른쪽에선 그다지 울림이 심하지 않다.

자연과 동화된 이 밤에 내 몸도 따라서 변화가 생긴 것일까.

한편으론 썩어질 육체보다 정신적인 영혼의 크나큰 울림을 느껴보고 싶다.   

 

                                                                            조슈아 트리에서의 일박 후기(後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