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서는 무엇이 흐르는가?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혼란으로 점철된 시간이 몇 주가 흘렀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생활 속에 파묻혀 무심히 지내노라면 저절로 정리되고
다시 원래의 삶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의 잔상은 쉽사리 걷히지 않았고 따라오는 괴로움은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하여 마음이 괴로워 길을 나섰다.
서산으로 기우는 태양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고 항상 밀리던 5번은 역시나 정체된다.
평소 같으면 다소 짜증이라도 냈으련만 별로 괘념치 않고 지났다.
나 홀로 있으면 무시로 넘나드는 잡념들이 어김없이 찾아든다.
어느덧 91번으로 들어서 요바린다를 지나면서 산 위에 세워진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슬슬 미쳐가나 보다. 나 혼자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15번으로 바꾸어 탔다.
동쪽도 아니요 서쪽도 아닌
남쪽으로 가고 싶다.
이 길이 끝나면 바닷가에 닿으리. 샌디에이고.
지난날 추억이 서린
그리움의 대상이다.
독백하는 나 자신을 자각하고선
왠지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때 바짝 올려진 창틈으로
무엇인가 타는 냄새가 새어든다.
후드 앞쪽에선
연기도 피어오르는 듯하다.
차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그러나 내 차에서 문제가 생겼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차의 속도가 뚝 떨어진다.
액셀레이더를 밟아도 속도가 붙지 않는다. 당황스러웠다.
프리웨이에서 이런 경험은 많지 않았다.
이민 초기에 똥차를 몰다 오버히팅으로 차가 멈춘 것과
운전하다 차가 이상하게 한쪽으로 기울여져 세워보니 타이어가 펑크나서
거의 떨어져 나갈 지경이 되었던 상황 이후로는 거의 차 문제는 잊고 살았었다.
앞쪽을 보니 천만다행으로 내리는 출구가 보인다.
비상 신호등을 켜고 출구로 내렸다.
차의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지만 그나마 달리던 탄력으로 차는 계속 움직인다.
아니 그런데 하필 내린 곳이 로컬 도로까지의 길이 무척 길다. 더구나 오르막이다.
결국, 중간쯤에서 차는 섰다. 저 멀리 모빌주유소 사인 판이 보인다.
난감했다. 후드를 열어보니 꽉 찼던 연기가 솟아오른다.
차 밑바닥으로는 점점이 오일이 떨어지고.
바라보이는 산등성이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해도 저문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두려움은 생각보다 컸다.
드문드문 옆으로 지나치는 차들은 전혀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아뿔싸. 주머니에서 꺼내 든 핸드폰의 배터리의 눈금이 깜빡깜빡 바닥을 가리키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사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아무도 없는 듯 집안이 고요했다.
낯선 방안의 천장이 무겁게 나를 짓누른다.
엄마를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혼자 내쳐진 두려움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생소한 골목 길은 을씨년스럽기만 하였다.
앞으로 가도 모르는 길만 펼쳐져 있고 우는 나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 보이는 덩그런 집으로 돌아가기도 무서워
한동안 길에 서서 엄마를 부르며 울기만 하였다.
차에 다시 올라 핸드폰 차지라도 해볼까 하여 시동을 걸어보았다.
역시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허망하여 잠시 있자니 때마침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내 앞으로 멈추어 선다.
오리건 플레이트를 단 트럭에서 한 젊은 친구가 내렸다.
도와줄 일이 있느냐고 다가서는 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한동안 내 차를 살피던 그가 아마도 엔진 문제일 것 같다고 한다.
그러더니 토잉 카를 부르라고 한다.
내가 이곳을 잘 모른다 하자 자기가 불러주겠다고 했다.
친절하게도 이곳 위치와 상황을 설명하더니
한 20 여분 있으면 토잉 카가 올 테니 조심하라고 하며 떠났다.
존이라고 하던 친절한 친구에게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
잡념이 사라졌다.
계속 나를 압박하던 혼란과 슬픔도 내 눈앞에 펼쳐진 순간적인
어려움에 잠시 잊혀졌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오묘함이여.
새로운 곤란으로 떨쳐버리지
못하던 기나긴 회한을
내 안에서 단숨에 밀어내 버리신 누군가의 사랑을 느낀다.
다만, 감사할 뿐이다.
이겨내지 못할 슬픔은 없다.
인내하며 순종하면 기다리던 날은 돌아오는 것.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둠이 내려앉아도
이제 두렵지 않다.
지금 무엇인가
내 몸속에서 흐르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