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의 장난 !
김 수영의 詩 '달나라의 장난'을 읽으면 Ezra W.L. Pound의 짧은 시 'In a station of the Metro'가 생각난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군중속에 이 얼굴들의 환영
검게 젖은 가지에 꽃잎이러라.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즘 계열의 시로서 문단의 주목을 끌고, 모더니스트로서 현대 문명과 도시 생활을 비판한 김 수영은 팽이를 돌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상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의 자신을 인식하고 도시의 나른한 일상적 행위에서 벗어나, 아름다워 보이는 별세계로 가는 경이로움을 맛보며 작가는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일까?
왜 제목을 '달나라의 장난'으로 표현했는가. 먼저 돌지 않는 팽이는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임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있는 것 같다.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도는 팽이는 지난 날의 성인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가슴에 칼을 들이댄다.
'제트기 벽화','비행기 프로펠러'를 현대 문명의 이기로 묘사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생활하지 못한 자신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고 인식되면 이제 벗어나야 한다. 어대론가.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달, 팽이 / 반칠환
달팽이 뿔은 팽이채다
깊은 밤 두 뿔로 달을 후려치는 달팽이
얼얼얼 저 순하디 순한 물렁한
달팽이한테 얻어맞고
달 돌아간다 月 月 月
때로 턱이 빠져 반 도막
달이 돌아간다 달달달
달과 팽이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겨도 달팽이는
달, 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