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산책012 2012. 10. 18. 15:30

목욕 - 길상호(1973~ )


옷을 다 벗었는데

박박 문지르니 다시

먼지의 옷이 벗겨진다

살비듬 옷이 벗겨진다

주름투성이 구겨진

헐렁한 옷만 남는다

이 옷을 벗기는 데

또 얼마나 걸릴까

여기저기 상처로 덧대

살아온 바느질 자국

수련처럼 물을 맞대고 살면

스르르 풀릴 실밥인데

마무리해둔 실 끝을 찾아

오늘도 배꼽만 긁는다

물기 젖은 창 뒤에 숨어

나를 훔쳐보던 감나무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어둠 속에 숨는다

벗어둔 낙엽이 한 장

유리창에 걸려 있다



 
 
목욕

                              달빛산책 

 

 

목욕은 벌거숭이 나신(裸身)을 드러낸
겨울 산과 같아서
헐벗고 추운 지난날로 돌아가네.
 
지난날은 모욕(侮辱)으로 점철된
분노의 너 자신과 슬픔의 나를 할퀸
추락한 바위틈으로 비켜섰지만
 
태초에 감쳐둔 배꼽 사이로
은혜의 빛이 살아 숨 쉬고
 
어둠 속의 별이 되어
추위에 나동그라진 나를 끌고
빙벽 산을 올라 하늘만 바라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