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2012. 10. 20. 07:00♧-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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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M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14라운드'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故 김득구 선수를 비롯한 홍수환, 허버트 강, 박종팔, 장정구 등 전설의 권투스타들의 과거와 현재를 카메라에 담아서 방영했습니다.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진 과거 유명선수들의 애환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그들에 대한 애잔함과 더불어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옛날 한국에서 권투경기는 가히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동양 챔피언전은 물론이고 세계 챔피언전이 열리는 날은 거리가 다 한산해지곤 하였습니다. 다방에서는 TV 중계 예고를 입구에 커다랗게 써놓고 손님을 끌었지요. 미처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는 다방에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소리소리 지르며 보던 기억도 납니다. 더 거슬러가면 프로 레슬링이 인기를 끌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 어릴 적 기억이고 아무래도 권투경기를 관람하던 기억만큼 강렬하게 남아 있는 추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권투도 어느덧 시들해지면서 TV 중계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만 우리 기억에서 지워지고 말았네요. 그런데 권투선수가 아닌 사회인으로 생활하며 실패와 어려움을 겪고 나름대로 성공한 선수가 있는 반면에 지금도 적응을 못 하고 생활이 힘든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화려하고 잘나가던 시절이 있다면 밑바닥 진창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힘들게 뒹굴던 시절도 있게 마련입니다. 과거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으며 누리던 화려한 시절이 길다면 느닷없이 닥쳐온 실패의 순간은 더욱 견디기 힘든 고통의 극치를 맛보게 되는 것이지요.

 

4전 5기의 신화를 이룬 권투선수 홍수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1974년 7월 4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반에서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새로운 챔피언으로 등극했지요. 이날 아침에 칙칙거리는 라디오 중계를 어른들과 들으면서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홍수환은 어린 시절 저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홍수환 선수는 1966년 김기수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챔피언 벨트를 차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남아공과 한국 간에 연결된 전화에서 당시 수경사 군인의 신분이었던 홍수환 선수가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하자 홍수환 선수의 어머니는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라고 대답했던 대화는 그 후 두고두고 유행어로 회자되었습니다.

 

권투는 배고픔의 쓴맛을 경험해본 선수들이 근성과 끈기로 달려드는 경기라고들 말합니다. 사실 홍수환 선수가 세계챔피언이 되고 나서 유제두, 박종팔, 유명우, 장정구, 김태식 등 헝그리 복서 출신의 많은 선수들이 등장하였고 또 세계 챔피언도 대거 탄생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36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그곳 더반에서 바로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전인 한국 축구대표팀과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벌어졌지요.

 

그러나 그 후 홍수환 선수는 실망스럽게도 1975년도에 미국에서 열린 2차 방어전에서 알폰소 자모라에 4회 KO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절치부심한 홍수환 선수는 1976년에 자모라를 다시 불러 재도전했지만 역시 12회 TKO 패로 이제 그의 시대는 끝나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요? 1977년 11월 26일을 똑똑하게 저는 기억합니다. 그날 홍수환 선수의 경기를 늦은 아침밥을 먹으면서(아마 일요일이었을 것입니다.) TV 중계로 보다가 너무 열이 나서 들고 있던 밥숟갈을 집어던져 버리고 경기도 끝나기 전에 방을 나와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계속 홍수환 선수가 다운당하고 나중에는 상대가 때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혼자 스스로 다운되어 버리더군요. 이때 TV를 꺼버렸던 분들 아주 많으실 겁니다.  

 

그러나 지옥의 사신인가 뭐라던가 하던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홍수환 선수는 3회 KO로 누르고 다시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TV에서 계속 보여주어 당시 장면을 보게 되었지만, 홍수환 선수는 2회 4번 다운된 뒤에도 3회 극적으로 KO승을 해서 WBA 슈퍼밴텀급 타이틀을 차지했고 당당하게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짜릿한 기적의 경기로서 한국 국민이면 모두 기억하는 명장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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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선수로서의 화려한 생명은 여기까지였나 봅니다. 그 후 타이틀을 뺏기고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나서 경험 없이 사회에 뛰어들어 여러 시련을 겪고서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항간에는 가수 옥희와의 스캔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꼭 그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옥희씨 하고는 홍수환 씨하고 알콩달콩 잘살고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분에게서 제가 직접 들은 후일담이지만 처음에 알래스카로 가게 되었답니다. 비교적 한국 사람들 없는 곳을 일부러 골랐다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택시 운전을 하면서 예전에 그가 맛보지 못했던 정신적 고통이나 육체적 고생을 다 누려보고 어느 정도 깨달음과 마음의 평정을 찾은 후에야 비로소 LA로 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글렌데일에서 한동안 살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도장도 운영하고 골프 관련 활동도 하고 강연도 하며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아마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의 그분이 그분 인생에서 선수 때보다 훨씬 행복하고 왕성한 전성기를 누리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개인적으로 그분께 바라는 점은 계속 즐겁고 행복하시길 빌지만 그분이 공인이라 스스로 생각하신다면 진정으로 사회에 가치 있는 보람된 일을 더욱 많이 하시길 부탁해 봅니다.
             

 

본인에게 주셨던 자필 사인


오랜 시간 우리에게 잊혀졌던 전설의 챔피언들은 링을 떠난 이후 쓸쓸하고 회한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돌주먹'으로 당시 큰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박종팔 선수는 고통 속에서 수없이 자살을 시도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식당을 운영하며 나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왠지 눈물이 찡하더군요. 한때 사기와 사업실패로 삶의 고통이 극에 달했던 장정구 선수도 이젠 평정을 되찾고 열심히 살아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사는 자의 몫입니다. 과거가 어떻든 사는 동안에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로지 살아가는 자의 몫으로 주어진 인생을 어려운 상황이라고 스스로 포기하지 말고 진실한 자세로 열심히 힘을 내어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도 진정한 인생의 챔피언이 될 것입니다.     

 

글: 달빛산책

 

 


 


 
(음원제공 YouTube : Psy - Champ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