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주인의 자비심을 기대하지 마라.

2012. 10. 20. 07:00♧-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맛있는 빵 이야기나 빵집 소개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차라리 빵 이야기를 하거나 빵집 소개를 하였더라면 근사했을 텐데 인간의 속성과 복잡다단한 경제 이야기다 보니 저도 사실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가 되어버릴 것 같네요. 
 
"우리가 매일 식사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이나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려는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영국 고전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저서 '국부론(1776)'에 나오는 유명한 첫 구절입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년 ~ 1790년)는 사실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이라는 용어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1759)'과 '국부론(1776)'에서 표현한 이 말은 시민사회에서 개인의 이기심에 입각한 경제적 행위가 결과적으로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사적 이기심과 사회적 번영을 매개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결국, 각 개인은 자기의 이익을 뜻대로 추구하고 있는 동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개인이 상상치 못했던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회라도 그 사회 내에서는 기본적인 경제행위가 있는데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중앙계획기관의 계획과 명령을 이용하여 위와 같은 경제문제를 해결하지만, 전체적인 계획과 통제를 하는 기관이 없다고 봅니다. 반면에 개인의 자유에 맡겨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좌파사상가들은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이란 탐욕과 동의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탐욕은 인간성을 망치고 그런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보와 왔듯이 계층 간의 이동성이 가장 활발한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또한, 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여러 다양한 혜택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체제의 긍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고, 부의 편중이 심해지고 경기가 어려워지면 한쪽으로 눌려진 공의 압력이 다른 쪽으로 밀려나듯 결국, 억압받는 계층의 불만이 폭발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요즘 뉴스에서 반 월가 시위를 보는 바와 같습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한계, 즉 자유방임주의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여집니다. 비근한 예로 1929년도의 미국 대공황을 보면 국가가 경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고 때문에 과잉 생산체계가 이루어졌고 따라서 생산과 공급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자본가 계층은 본질적으로 이익추구를 위해 재화로 교환할 수 있는 물품을 많이 만들어내고, 그 요구에 따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 대가보다 교환가치가 높은 물품을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면 한 노동자의 임금이 100불이라면 그 사람이 만들어낸 물건은 110불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차액은 10불이 되고 이 10불이 공장주가 가질 수 있는 돈, $10-$x이 됩니다. 그리고 $x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사용되지만, 그 $x의 가치 또한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어 자유주의 경쟁과 그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창조해내는 자유주의의 신조는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빈부갈등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보다 아주 젊었던 시절에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회적 모순관계에 심각하게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허망한 토론은 끝이 없고 결국, 밤새도록 술을 먹고 혼란스런 머리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해도 뜨기 전인 어스름한 새벽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바로 환경미화원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먹고 마신 지저분한 흔적들을 치우느라 무척 바빠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먹고 싸고 스스럼없이 버렸는데 그분들은 우리의 더러운 흔적들을 치우고 깨끗하게 복원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죠. 단순히 돈을 받고 자신의 일을 한다는 개념으로만 이해한다면 결국 투쟁과 이익창출이 대립하는 추악한 자본주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고 희망은 기대할 수 없는 삭막한 세상이 되어버릴 겁니다.  

모순되는 것 같지만 애덤 스미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궁극적으로 역지사지하는 심정으로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이기심을 조금 버리고 공중의 이익을 우선한다면 그 안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서로 소통하는 긍정적인 사회관계가 형성됩니다. 바로 이런 건강하고 끈끈한 사회관계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자유주의의 본 모습이자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신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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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공 YouTube : Dans Le Meme Wagon - Majorie No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