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9. 19:00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청빈이란 스스로 맑고 가난하게 사는 삶인줄 알았다. 그러므로 세상의 부정직하고 더러운 물질을 쫒지않고, 양심에 따라 곧은 길을 가려고 노력한 선인들이나 성직자를 존경하고 그들의 행로를 살피며 때론 부러워하고 때론 좌절하기도 하였다. 홀로 살지못해 가족이 있고 외로워 친구가 있어 언제나 물질이 필요하였고,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욕망이 자리하여 날마다 불행하였다. 소유한 재산으로 인격마저 평가받는 요즘 세상에는 타고나지 못한 잘난 능력마저 아쉽기에 자신을 돌아보면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청빈의 상대개념은 부가 아니라 탐욕이다.
가시적인 물질이 아니라 불가시적인 정신적 욕망이다.
한자로 '탐貪'자는 조개 '패'위에 이제 '금'자이고,
가난할 '빈貧'자는 조개 패 위에 나눌 '분'자이다.
따라서 탐욕은 화폐를 거머쥐고 있는 것이고, 가난함은 그것을 나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청빈이란 뜻은 놀랍게도 서로 나눠 갖는다는 뜻이다.
가난이란 스스로의 무능이나 타고난 환경적 어려움으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상황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생성되어진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쏟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과 더불어 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만족할 수 있고 또한 행복할 수 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불행하다.
물질이 가치 기준이 아니기에 힘은 들겠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성 프란체스코는 가난은 우리 자신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들어올리는 길이라 하였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이웃과 나눠 가질 때 그것은 우리 자신을 높이 들어올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마주친 삶의 경제적인 위기는 우리 자신을 떨어뜨리지 않고 우리 자신을 바로 높이 들어올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 스님은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소유의 비좁은 골방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은 밖으로 부자가 되는 일에 못지 않게
인생의 중요한 몫이다. 인간은 안으로 충만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 잡념없이 기도를 올릴 때
자연히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때는 삶의 고민 같은 것이 끼어들지 않는다.
내 마음이 넉넉하고 충만하기 때문이다.
(중략)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생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청빈의 화신이다.
또 진정으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다.
그 단순함과 간소함 속에서 생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삶을 살 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모자람이 아니고 충만이다.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길은 인간의 길이고
꼭대기에 이르는 길이다. 내리막길은 쉽고 편리하지만
그 길은 짐승의 길이고 구렁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기 자신이 선한 가운데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누군가를 도와주면 바로 내 자신이 기뻐지고, 누군가를 언짢게 하거나 괴롭히면 자기 자신이 괴로워진다. 사랑으로 베풀고 베풂으로 인해 진정으로 행복하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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