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7. 15:00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화창한 토요일에 바람도 쐴 겸 해서 칼스배드 꽃단지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탁 뚫린 5번 프리웨이를 남쪽으로 달려서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칼스배드 빌리지에 도착해 보니 먼저 웅장한 풍차가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나 웬일이란 말인가.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뒤덮인 들판이 갑자기 짜~ㄴ하고 나타나서 그동안 도시의 회색빌딩과 조잡한 간판을 보며 찌들어진 눈을 시원하게 풀어줄 기대를 엄청나게 하였건만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입구에서 듣게 되었다. 이미 지난주에 시즌이 끝났다고 한다. 이 무슨 맥빠지는 멘트인가.
아쉬운 마음에 굳게 닫힌 철조망 사이로 카메라를 집어넣고 조금 남아있는 꽃들을 찍어보았다. 이미 많은 곳의 땅은 갈아엎어져서 그야말로 흙먼지만 풀~풀~ 나고 색깔별로 달리하여 심어놓은 꽃들은 멀리서 보기에도 점점 시들어 가고 있었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이 너무도 야속하였다. 마치 철조망 안에 갇힌 수감자가 자유로운 바깥세상을 갈망하듯이 철조망을 넘어서 꽃에게로 달려가고 싶었다.
꽃단지를 관리하고 있는 화원 앞에는 앙증맞고 어여쁜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고 색깔도 다르고 키도 다른 꽃들이 잘 어우러져서 그야말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꽃동산이었다.
화원 안을 들어가 보았다.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다운지. 색깔도 다양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즐겁게 하고 그 원색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잠시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천국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원스레 물이 쏟아지는 작은 분수대도 있고 분수대 옆에는 보라색 도라지 꽃이 피어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니 생각하던 도라지 꽃은 아니었다. 한국의 야산에 듬성듬성 피어 있는 하얀색과 보라색의 청초한 도라지 꽃은 한때 좋아하던 꽃이었다.
나무 펜스에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만들어진 풍선이 달려있고 화려한 디자인의 화병도 보인다. 저 화병에 꽃을 꽂아두면 꽃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려나. 그러나 여백의 미도 있는 법인데 오래 바라보니 약간은 눈이 피로해진다.
화원 한쪽 끝에는 많은 새들이 있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는 듯 하다. 그러나 조심스레 다가가 보니 진짜 새가 아니었다. 새들의 지저귐도 다만 착각이었을 뿐. 흰색과 보라색의 서양란도 보인다.
(음원제공 YouTube : Rainbow - The Temple Of The King)
화원을 나서면서 작은 선인장 화분을 하나 샀다. 선인장이 전자파를 흡수한다는 예전의 기사가 떠올라 앙증맞은 것이 예쁘기도 하여 샀는데 컴퓨터 책상 위에 놓아두어야겠다. 만약 꽃이 피면 무슨 색깔의 꽃이 필런지 궁금하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60번 프리웨이를 동쪽 끝까지 가본 적이 없을 때였다. 어느 날 그곳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모레노 밸리를 지나자 한없이 계속되던 트레픽도 풀리며 시원스레 길도 뚫렸다. 그러나 곧 길은 깊은 산중으로 들어섰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어두운 밤중에 달리다 보니 왠지 무섬증이 인다. 가로등도 없고 길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지나치는 차들도 뜸해졌는데 도대체 얼마나 가야 이 길이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GPS도 없고 스마트 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어두운 산길을 혼자서 조심스레 달리다 보니 더욱 지루하고 초조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결국, 차를 돌려 되돌아 나왔다. 끝도 알 수 없는 길을 언제까지 무작정 달릴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 아는 길로 가자. 모르는 길은 피하고 아는 길로만 가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10 여분만 가면 곧 길이 끝나면서 10번 프리웨이와 연결되는 것이었다. 10분만 참고 더 갔으면 되었는데 쓸데없이 가고 오느라 버린 시간이 1시간여 되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삶을 살면서 항상 불안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르고 맞는 것인지 판단하기에도 모호하다. 차라리 결말을 안다면 설사 따분하기는 할지언정 그렇게 불안한 마음은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행복인지 잘 모른다. 항상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의 연속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야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고 행복했던 시간인지 깨닫는다. 이처럼 안개처럼 뿌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면 현재는 항상 괴롭게 느껴질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 사는 현재를 즐거운 마음으로 누리고 싶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생각해 본다. 미래는 그분에게 맡기고 현재를 조급해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충실히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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