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8. 11:00ㆍ♧- 사는 이야기 -♧/역사와 예술
신문에서 6·25 전쟁 때 전사한 한 무명 학도병의 일기를 게재한 기사를 읽었다. 읽는 도중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글썽거려 시야가 뿌옇게 흐려온다. 그 일기의 한 대목은 이렇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자랑도 하지 않았다."
메모리얼 데이를 앞둔 지난 25일 한국에선 굉장히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12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가 미국에서 봉환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50년이 넘도록 북한 땅에 묻혀있다가 북미 간 미군 유해 발굴 작업에서 수습되어 하와이에 있는 미 합동전쟁포로실종자 사령부(JPAC)로 옮겨졌다가 유전자 감식으로 신원확인 절차를 거친 후 극적으로 62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군의 특별 수송기를 보내 전사자 유해를 모셔왔고 최대의 예우를 갖추어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최고 관계자들과 유족들이 전사자 유해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국방부 장관은 자랑인지 한탄인지 모를 굉장히 안타까운 말을 하였다. "북한에서 전사한 분을 모셔다 안장한 제1호다. 또한, 대통령이 직접 나온 것도 처음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새벽 4시에도 미군 전사자 유해를 맞이하러 공항으로 뛰어나가고 미군의 유해를 단 한 구라도 수습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은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유해를 찾지 못한 국군 전사자는 약 1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중에서 3~4만 명의 유해가 비무장지대나 북한땅에 묻혀 있고 우리 땅에 있는 유해도 전체의 5% 수준인 6,600여 구만을 겨우 발굴했다고 하니 그동안 우리의 의식 수준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그동안 먹고 살기에 바빠서 전사자 유해를 찾는 일에 소홀했다고는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소중한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위한 노력이 너무도 부족했다고 본다. 다만 지금이라도 12구의 전사자 영령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재 우리가 누리는 행복과 평화가 당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도 같이 버린채 피를 흘린 선열들의 순국정신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겨누고 있는 북한에선 "종북 지랄증이 또 발작했다."라며 일국의 정상적인 통신매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원색적이고 적나라한 용어로 한국에 상투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는 시점에도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좌빨이니 보수꼴통이니 하며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패거리 싸움이나 하고 때 없이 끊임없는 이념논쟁이나 벌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일부 젊은이들은 점점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갖은 머리를 짜내는 행태가 바로 슬픈 현실이다. 학교에서는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소모적인 입학 경쟁에 매달려 있고 이기적이고 추악한 이권에만 목을 매는 어른들은 전혀 모범적인 본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점점 국가는 나와는 상관없는 추상적인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무명 학도병 전사자의 일기는 이렇게 끝난다.
"내 살던 나라여, 내 젊음을 받아주오! 나 역시 이렇게 적을 맞아 쓰러짐은 후배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함이니 후회는 없다."
자신의 목숨과 안위보다 국가와 이 땅에 살고 있는 후손들을 위한 충정이 글에 서려 있다.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상황에 부닥쳐 있다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전쟁터에서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을까?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땅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충정 어린 마음씨의 많은 고귀한 선배들은 현재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경제 상황에도 전혀 선열을 알아주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후배들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지하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음원제공 YouTube :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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