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9. 09:30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왠지 마음이 초조하고 적적하여 싹이 트면 무성해진다는 고구마를 실내에서 길러보았다. 부엌을 뒤져보니 아내가 사다 놓은 양파와 고구마가 우선 눈에 띄었다. 양파는 이미 많이 길러본 터라 식상하고 널브러져 있는 많은 고구마 중에서 싹이 움튼 녀석들을 골라 기르기로 작정하고 담을 그릇을 찾았다. 그러나 녀석들은 모양과 사이즈가 다 제각각이라 마땅한 그릇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내가 선물 받았다고 그동안 쓰지도 않고 모셔두던 예쁜 파란 컵이 골라낸 녀석 중에 제일 큰 녀석에게 딱 맞았다. 빙고! 나중에 아내에게 야단맞을 일이 두려웠지만 일단 어렵게 찾아낸 만큼 큰 녀석에게 통 크게 선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에게는 마땅한 그릇이 없어 궁여지책 끝에 물병을 잘라서 임시로 녀석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식물도 애정을 가지고 길러야 잘 자란다고 예전에 들었던 터라 녀석들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다. 큰 녀석에게는 영희, 둘째 녀석에게는 윤희, 셋째 녀석에게는 경희 마지막 막내 녀석에게는 순희 이렇게 해서 마침내 희 시스터즈가 탄생하게 되었다. 영희, 윤희, 경희, 순희야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기르기 시작한 지 5일째가 되어도 녀석들은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다만 큰 녀석 영희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파란 컵이 마음에 들었는지 왕성하게 자랐다. 뿌리도 많이 나고 싹도 크게 자라 제법 큰 녀석의 위용을 과시하였다. 이래서 큰 녀석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것일까.
희 자매를 기른 지 드디어 10일째가 되었다. 그동안 녀석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큰 녀석 영희는 나의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씩씩하게 잘 자라 주었다. 이제는 줄기가 크게 올라 초록 잎도 나고 아래로는 뿌리도 무성한 것이 완연한 고운 자태를 자랑하게 되었다. 영희의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위안을 받고 소망을 잃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도 영희처럼 싹이 올라 무성하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5일째보다는 움튼 싹도 커졌고 뿌리도 많이 자랐다. 아마도 며칠이 지나면 영희처럼 무성하게 줄기가 올라 잎도 나오리라. 처음에는 막내인 순희가 염려스러웠다. 크기도 제일 작은 것이 야리야리해 제대로 자랄지 의심스럽기만 하였다. 어릴 때 유난히 잔병치레가 잦은 막내와 닮았다. 그러나 이제는 제 언니보다도 크게 자랐기에 순희에 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순희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셋째인 경희보다도 지금은 뿌리가 훨씬 많이 자랐다. 이틀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고 아침에 볕이 잘 드는 양지쪽 창가로 옮겨준 후 저녁에 돌아와 녀석들을 확인해 보면 확실히 아침보다는 많이 자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말을 못하는 식물이지만 애정을 가지고 녀석들을 대하니 녀석들이 나를 보면 반갑게 대하는 것 같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머릿속에 품었던 상념들을 나누다 보면 어느덧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그때 등 뒤로 다가선 아내의 일갈이 뒤통수에 쏟아졌다.
"으그~ 그렇게 고구마에 쏟는 정성을 마누라에게 반만이라도 쏟지. 진상아!"
(음원제공 YouTube : 천년의 사랑 - 박완규)
'♧- 사는 이야기 -♧ > 삶을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플래시 효과의 마퀴 태그 (0) | 2012.10.19 |
---|---|
경희 윤희 순희를 모두 떠나 보내며 (0) | 2012.10.19 |
꼭 지켜야 할 스트레스 관리 10계명 (0) | 2012.10.19 |
체스와 장기의 유래와 역사 (0) | 2012.10.19 |
아침에 에그 커피 한잔, 온종일 개운 (0) | 2012.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