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9. 09:30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경희, 윤희, 순희를 떠나 보내며
어제 경희, 윤희, 순희를 떠나보냈다.
그동안 공을 들여 소중하게 품 안에 키우고 보살폈던 아이들이다. 우연히 그들과 만났지만 나는 그들을 직접 선택했고 그들이 가진 생명의 싹에 호흡을 불러 넣었다. 사랑을 흠뻑 주고 날마다 이름을 부르며 보듬어 안았다. 그들은 마치 화답하듯 매일매일 뿌리를 힘차게 뻗어내렸고 푸른 줄기를 키우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물을 주고 햇볕을 받게 하고 신선한 바람을 통하게 하여 그들에게 외부의 환경과 맞추어 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나에게 신선한 기쁨을 주었고 또한, 생명의 신비로움도 새록새록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들은 처음에는 작은 고구마였지만 싹이 나고 줄기가 오르고 뿌리가 내려 자꾸만 커 나가서 이제는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번이나 쑥쑥 오르는 줄기를 잘라주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더욱 왕성하게 줄기를 키워 종국에는 천장에 닿을 듯이 자라나기만 한다.
하여 실내에서는 도저히 키울 수 없을 것 같아 텃밭에 심으려고 입양을 보냈다. 다 보내기에는 아쉬워 제일 큰 아이인 영희만 남기고 세 아이를 보냈다. 잘 가거라. 경희, 윤희, 순희야! 내 품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자라서 이제는 너희를 닮은 많은 고구마들을 키워내거라. 그동안 즐겁고 고마웠다.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가끔 지나치다 만나면 눈인사라도 서로 주고받자꾸나.
경희, 윤희, 순희를 떠나 보낸 후 단상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유한한 육체의 소멸과 현세의 시공간에서 육체로부터 영혼의 이탈만을 의미하는 것인가. 가끔 신문의 부음란을 보거나 주변의 아는 사람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접할 때마다 왠지 삶이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덧 하나 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지인들이 사라진다. 나도 이제 그만큼 나이가 들은 것인가. 치열했던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눈과 귀와 손을 놓아버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아는 이와의 헤어짐이란 단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자연 현상의 인과법칙일 뿐이던가.
각자의 삶은 언제나 소중하다. 부모의 사랑과 정기로 화합하고 기쁨과 축복 속에 신비함으로 태어나 철모르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뒤돌아보지 않던 젊음을 만끽하고 어느덧 나이 들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석양에 쓸쓸히 퇴장하는 것이 정말 인생이런가. 그러면 반드시 죽음이 있기에 삶이 소중한 것일까. 사람이 영원히 산다면 삶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각박했던 삶도 처절했던 삶도 허상을 쫓아 아등바등하던 삶도 꿈도 희망도 물질도 모든 것이 죽음 앞에는 한순간 스러지는 먼지와도 같다.
서편 하늘에 무심코 떨어지는 별똥별과도 같이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말라버리는 이슬 한 방울과도 같이 우리 삶은 가엾고 허무하다. 누군가 그래서 삶이 더욱 소중하다는 말은 무책임하고 가슴에 와 닿지도 않고 단지 들판에 지나가는 바람처럼 쓸쓸한 느낌만을 남긴다. 답답하고 허전하다. 물론 절대자의 섭리를 믿는다고는 하여도 다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다만 따라갈 뿐. 분명 인간의 지식한계를 벗어난 뚜렷한 존재의 의미는 있을 터인데 지금으로선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음원제공 YouTube : 사랑과 평화 - 부족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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