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부모의 참 교육법은

2012. 10. 20. 07:00♧-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오늘 큰애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그동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총 3번의 졸업식을 겪었지만, 오늘따라 왠지 눈물이 난다. 커다란 학교 풋볼 경기장의 사이드 스탠드에 앉아서 까마득히 바라보이는 식장의 아이들이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내 아이가 어디쯤 앉아있겠거니 머릿속으로 가늠해보며 모두 파란 가운을 입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서 가만히 내 아이의 동선을 눈으로 따랐다.

 

주변에는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 완연한 축제 모드였지만 나만 홀로 왜 눈물이 나는 것일까. 이제 어른이 되어 곧 내 곁을 떠난다는 아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날 아빠로서 조금 더 사랑으로 보듬어주지 못했던 후회와 연민 때문일까. 돌이켜 보면 어린 날 아이가 보채거나 투정을 부릴 때 좀 더 성숙한 마음으로 아이를 감싸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든다. 또한, 느닷없이 아이가 짜증을 부리던 것은 아이도 외롭고 괴로워 자신도 자신을 조절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무언의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때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어른의 입장에서만 아이의 버릇없음을 야단치고 나의 불쾌한 감정만을 해소하려 하였다.

 

어쩌면 큰 아이라 아이에게 거는 나의 기대치가 높았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제법 머리가 영특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또래보다 빨랐다. 빨리 기고 빨리 서고 빨리 걷고 빨리 말하고 11개월 때 아이는 이미 뛰어다니고 말도 잘했다. 자라면서도 보이는 모든 사물에 대한 궁금증을 연신 물어댔다. 저건 왜 그래? 이건 왜 이렇지? 왜? 왜? 왜? 온종일 왜 그러냐고 물어대는 통에 천재가 아닌 범인인 나는 아주 진저리를 쳤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하일리 기프티드 판정을 받고서 아주 확실하게 아이에 대한 환상에 젖었었다. 오! 우리 아이가 천재구나. 이제 나도 드디어 하버드에 아이를 보내놓고 '하버드에 자녀를 입학시킨 부모의 자녀 교육법' 같은 책이나 저술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공상에도 빠졌다. 

 

도대체 엄마 아빠를 봐서는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은 천재가 갑작스레 우리 집안에도 태어났으니 부모의 기쁨이요, 집안의 경사요, 대한민국의 자랑이요, 미국의 은혜로다. 그래서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러나 천재도 아닌 내가 언제 천재를 길러봤나. 교육을 해보았나. 그냥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대로 가르쳐 볼 뿐. 지금 부분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다만 아이에게 퍼즐을 많이 사다 주었다. 아이가 은연중에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는 것을 눈치채고 처음에는 50조각, 100조각 나중에는 200조각짜리를 사다 주니 조그만 책상이 비좁아 방바닥에 쏟아놓고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아이는 곧잘 맞추었다. 나는 보기만 해도 어지럽던데. 

 

그러나 과도한 기대와 욕심은 금물이었다.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특히나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이고 소중한 자신만의 삶이 있고 길이 있다는 것을. 책을 많이 읽게 해야 한다. 잠재력을 무한대로 길러주어야 한다. 조기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등등의 '영재 아이 만들기' , '우리 아이 영재로 키우기' 등의 솔깃한 유혹의 문구들은 다만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부모의 헛된 욕망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리한 의욕이 높아지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되고 무리수를 두게 된다. 바둑두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과욕을 부리다 보면 시야가 좁게 되어버리고 종국에는 뻔한 악수를 두게 된다.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보이는 수가 직접 두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판을 넓게 보라느니 '아생 연후에 살타'라는 등의 격언이 나왔겠다. 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사실 빅 베이비였다. 5.8kg이었으니 제 엄마가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나. 아무리 초산이 대부분 늦다 하나 12시간 정도 태어나느라 고생했으니 산모나 아이나 모두 진을 뺏을 것이다. 아이에게 헛된 바람이 심어지기 시작하자 공부가 기대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아이에 대한 짜증과 야단이 남발되었다. 아이도 너무 과욕을 부리는 아빠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잘못된 행동이었다.

 

어느 날 불현듯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부모의 평판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헛된 기대를 접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나만의 갈등도 있었다. 아이는 아빠가 자신에게 무리한 기대를 접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중학교에 가서는 초등학교 보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중학교보다 공부가 점점 떨어졌다. 그래도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공부로 인해서 야단치지 않기로 한 나만의 약속을 스스로 지켰다. 다만 '아이고 나만 속으로 끓는다 끓어! 네가 나의 시커먼 속을 알까 몰러.' 아이가 이러다 대학이나 제대로 갈까 걱정이 되었지만, 본인이 알아서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내버려 두었다. 언젠가는 부모의 마음도 헤아려 주기를 바라면서.

 

바둑 격언에 '공격은 날일 자 탈출은 한 칸 뜀'이라는 것이 있다. 바둑판 선의 무늬를 따라 바둑 돌의 움직이는 패턴을 말하는 것이지만 인생에 굳이 대비해 보자면 상대를 공격할 땐 직접적으로 정면보다는 측면의 모서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반대로 그 공격으로부터 탈출하려면 있는 자리에서 바로 바라보이는 다음 단계보다는 훌쩍 한 칸 건너뛰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한 칸 뛴다는 것은 바로 눈앞의 이기심이나 욕심을 버리고 또한,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면 과감히 실행하기 어렵다. 더구나 다음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것이니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큰 아이의 졸업식을 보면서 짧은 시간 동안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많은 생각들이 있었다. 대부분 나의 잘못이 컸다. 그래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준 큰 아이가 고맙다. 비뚤게 나가지 않고 착하게 자라주었으니 오히려 제가 아빠를 잘 가르친 것이 아닌가. 아직도 희망 사항이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제가 아빠 몰래 열심히 공부해서 동부 아이비리그는 아닐지라도 버클리 정도는 가야 어릴 때 비록 엄마 아빠만 하는 소리였지만 천재 소리를 듣던 자신에 대한 보람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미련이 남아있기도 하다. ㅎㅎ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욕심이란. 그러나 비록 랭킹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고 밑에 밑에 새크라멘토로 가게 되었다. 녀석이 이왕 가려면 아주 멀리 가거나 아니면 하필 가장 가까운 곳은 놔두고 남쪽 바닷가 끝이나 아니면 차로 6시간 걸리는 북쪽으로 가게 되었다고 고민하길래 녀석의 앞으로의 공부를 위해서 비록 부모와 많이 떨어져 있긴 하지만 북쪽으로 가라고 조언해 주었다. 잘한 결정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에게는 장한 큰 딸이다. 그곳이라도 가게 되어 정말 기적일 뿐이다. 하지만 자꾸 눈물이 흐른다. 아쉬움의 눈물이 아니라 후회와 회한과 그리움의 눈물이다. 이제 8월이 되어 아이가 기숙사로 훌쩍 떠나게 되면 더욱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품을 떠나 더 크고 성숙해지고 단단해져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