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맷돌을 누가 돌리는가?

2012. 10. 20. 14:00♧-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이란 산업혁명이란 기치 아래 근대화 과정이 이루어지는 영국에서, 종속된 서민들의 비참한 빈곤 상태를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묘사한 단어를 일컫는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밀턴]의 서문에 보면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And did those feet in ancient times)'이란 시가 실려 있다.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 잉글랜드의 푸른 산 위를 거닐고/ 신의 성스러운 양이/ 기쁨의 풀밭 위에 보였네./ 구름 낀 산 위로/ 성스러운 얼굴도 빛났을까?/ 여기 이 어두운 악마의 맷돌 사이/ 예루살렘이 세워졌을까?'

 

1769년 런던에 앨비언 제분소(Albion Flour Mills)가 들어섰다. 증기기관을 개량한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버밍엄의 공장주인 매튜 볼튼과 손잡고 세운 이 제분소는 1주일에 6,000부셸(약 169톤)의 밀가루를 생산했다. 매우 놀라운 생산력으로 손쉽게 주변의 전통 방앗간들을 몰아냈지만 2년 만에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

당시 전통 방앗간들은 이 제분소를 '악마의 방앗간'으로 여겼고, 제분소 화재를 묘사한 당시 그림에는 제분소 꼭대기에 웅크리고 앉은 악마가 그려져 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제분소 가까이에 있던 집에서 자랐기에 아마도 이런 상황을 시로 묘사했을 것이다.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1944년)]에서 시장경제를 '악마의 맷돌'이라고 불렀다.

 

만약 정치적,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면 순식간에 인간(노동)과 자연(토지)과 구매력(화폐)을 황폐화하는 시장경제의 속성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가령 노동력을 소유자 마음대로 처리한다면 그것을 담고 있는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실체마저 하나의 소유물로 사회 변화에 노출되어 희생되고, 또 자연은 오염되고 파괴된다. 따라서 구매력 수급을 시장 메커니즘에만 맡길 때 기업은 원시사회가 홍수나 가뭄에 시달렸듯 주기적 파산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경제는 시장이 아니라 사회적 제약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 그는 시장경제의 재앙 또한 경제를 다시 사회적 통제 안에 가두어 둠으로써만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적 경제위기로 번지면서 그의 지적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반 월가 시위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월가의 탐욕과 부패에 저항하는 구호를 외쳤고 시위가 4주째로 접어들면서 보스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등 미 전역 25개 도시로 퍼져 나가고 있다. 시위대들은 "상위 1% 부유층의 탐욕 때문에 99%의 사람들이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또한, 기업의 탐욕과 실업, 경제적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시위는 미국을 넘어 유럽과 전 세계 25개국 400여 도시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제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은 ‘자본주의 3.0’이라 불리는 신자유주의가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는 등 경제 실패를 일으켰다며 이를 전면 수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열심히 일했지만 파산하고 쫓겨나는 서민들의 통곡과 달리 월가는 20조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삼키고도 여전히 탐욕의 춤을 추고 있다. 정부 재정지출을 줄이라는 요구가 있지만 당장 복지와 연금을 줄인다면 서민들의 가계는 피폐해지고 인심이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금융상품이 있다. 제조업의 기반이 약한 부실국가의 채권을 매입한 대형 은행들에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다시 이를 2차, 3차 파생상품으로 금융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만약 파산하는 국가가 생긴다면 연쇄 작용이 일어나 전 세계는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된다. 지난 2008년 미국의 부동산 경기가 급속도로 하락한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런 금융 파생상품의 범람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연유이다.

 

그러나 월가의 CEO들은 이런 파생상품을 팔고 수백억을 벌었으며, 경제가 어려워져 20조의 세금을 쓰고도 수천만의 성과급을 받았다. 더구나 그들은 정부의 고위급 책임자나 경제고문 등을 맡고 있다.

 

과연 그들을 누가 막을 것인가. 제조업이 부실해도 금융이 활성화되면 경제가 번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시기는 짧다. 그러나 허구와 부실의 타격은 크다. 지금 세계는 재앙의 손길이 서서히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흉흉한 손길로 '악마의 맷돌'을 다시 돌린다면 고통 받는 서민의 통곡소리는 높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시장만능주의의 파탄 조짐으로 잠시 멈춰선 '악마의 맷돌'을 그들은 내던지기보다 아마도 다시 부드럽게 새로 돌릴 준비에만 바쁜 듯하다.

 

 

(음원제공 YouTube : Bob Dylan - Knockin' on Heaven's do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