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9. 14:00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외눈박이가 되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그리되었다는 말이다. 하여 모든 것이 불편하다. 그래도 세상은 잘 보인다. 한쪽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이 별다를 것은 없다. 별다르지 않으니 달라질 것도 없다. 물구나무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뒤집어져 있었다. 나에게 뒤집힌 세상은 뒤집어놓은 나에게 어쩌면 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쪽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은 특별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눈 감고 기다리던 찰나의 순간에 천지개벽은 아니더라도 가린 한쪽의 변화만큼이라도 세상이 달리 보이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뇌를 완전히 포맷하고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모양이다. 어쩌면 뇌를 바꾸더라도 나에 의해서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다. 오른쪽 눈이 시어서 제대로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 눈도 보호하고 사물도 보기 위해서 안대를 착용했다. 그러다 보니 사물을 오래 보기 힘들고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 따라서 식사할 때 젓가락으로 콩자반 집어 먹기가 예삿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예 어려운 것은 되도록 안 집어 먹는다. 빽빽이 꽂혀있는 김 한 장 꺼내는 것도 여러 번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손으로는 하지 않는다. 소금 묻은 손가락으로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눈을 무심코 비볐다가는 그냥 죽음이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말했다. 죄의 사유는 보편적 진리요.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적 신 이념이라. 따라서 이것이 사실임을 시인하는 자는 이미 죄의 사유를 받았다고. 더불어 세상은 은혜에 의해서 거저 의로워졌고, 나아가 우리에게 값없이 베풀어진 은혜는 회개 없이 죄의 사유가 가능하고 은밀한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과 고백 없이 베푸는 성만찬과 순종 없는 은혜와 십자가 없는 은혜가 넘쳐난다고 말이다. 그런 것인가? 그러나 자랑할 것이 없다. 제자도 진실한 그리스도인도 행위도 다만 헛것이요. 그렇기에 사람의 행위는 가장 선할 때도 헛것에 불과하다. 신앙도 따르게 된 과정도 우리의 관심사가 못 된다. 다만 부름에 직접 순종하는 길 외엔 방법이 없다. 그렇다. 하지만 그런 본회퍼도 생사의 기로에서 무한히 살고 싶어했다. 확신하자면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인간은 없다. 그래서 외롭고 두려운 것이다.
당분간은 슬프게도 지인들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지난주에 만남 자체가 즐겁고 유익한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한 이후로 갑자기 나의 눈이 아프더니 반쪽 얼굴 자체가 괴로운 지경이 되었다. 아마도 세상 즐거움을 모두 버리라고 하신다. 만남을 즐기는 나에게 발길을 거두게 하신다. 견딜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시는 것일까? 그런지 몰라도 증상이 시작되던 초기엔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금방 거두어 가시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증상이 꽤 오래간다. 따라서 근심도 깊어간다. 그렇지만 사물과 자연이 순조로운 변화를 하듯이 끝나는 시간은 찾아온다. 다만 그때까지 쪼그라들 마음이 문제이지만. 빛을 싫어하게 된 나의 눈과 과묵함을 강요하는 입과 달리 걸어 다니는 팔다리는 멀쩡하고 자판을 두들기는 손가락도 멀쩡함을 새삼 감사드린다.
(음원제공 YouTube : 그게 나였어 - 이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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