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5. 22:20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똑똑
누구세요?
내레 북에서 왔수다.
아이 C 깜짝이야.
'깜놀'이라는 네티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 있다. 깜짝 놀랐다는 뜻인데 정말로 깜짝 놀랐다.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비무장으로 월남한 북한군 병사 한 명의 귀순으로 우리 쪽의 휴전선 철책 경계가 가볍게 뚫렸다고 한다. 북한군과 대치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한국 군인들의 경계가 너무 허술하기만 하고 경계 임무 중인 군인들이 도대체 초소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더구나 해당 부대는 상급부대에 허위보고까지 올려서 국민들에게 온통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네티즌들은 기사의 말미에 위와 같이 조롱하는 댓글을 수없이 올려 보는 이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한다.
지난 2일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지역에서 발생한 북한군 병사의 귀순 사건은 정황상 여러 가지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군 당국이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북한의 강원도 지역 후방부대에서 중급병사(상병)로 근무하다 탈영했다는 북한군 병사는 160cm의 왜소한 키에 불과 50kg의 협소한 체격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아무런 장비도 없이 비무장으로 불과 2시간 30분여 만에 DMZ의 북측 철책과 전기 철조망을 가볍게 통과하였고 또 우리 측 철책까지 별다른 제지 없이 통과했다니 어떤 의미에서 보면 두렵고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한국에서 군 생활, 특히 전방 GOP 지역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은 이 기사를 보며 약간 고개를 갸웃하셨을 것 같다. 비무장지대(DMZ)는 남북으로 4km에 걸쳐 있고 북측 지역은 2중 철책에 전기 철조망이 있으며 철책을 통과하더라도 온통 사방이 지뢰밭이다. 통상 남북이 경계하는 철책(GOP) 안에는 휴전 조약상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무기도 들일 수 없으나 이미 유명무실해졌고 현재에는 양쪽 GP(경계 임무를 위한 소초)가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까지 무수하게 있고 남북 GP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서부전선 쪽의 약 500m이다. GP에 있는 병사들은 이틀에 한 번꼴로 물자와 식량을 보급받는다. 따라서 GOP와 GP를 연결하는 도로가 그나마 지뢰로부터 안전하지만, 도로를 벗어나면 어디가 지뢰밭인지 사실 GP에서 근무하는 군인들도 잘 모른다. 더구나 밤에는 사단 수색대들이 비정기적으로 DMZ 안에서 매복을 서기 위해 들어 온다. 그런데 귀순 병사가 야간에 단신으로 특별한 장비도 없이 삼엄한 북한의 경계를 피해 이중 철책을 뚫고 지뢰밭을 피해서 매복을 서는 양쪽 수색대까지 따돌리고 불과 2시간 30여 분만에 남측 철책까지 통과하였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과거 GP에서 근무했던 본인 생각으로는 특수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병사가 아무 장비도 없이 야간에 이렇게 초 스피드로 장애물이 많은 DMZ를 통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전혀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일임은 부인 할 수 없다. 북측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거나 아니면 특수 임무를 띤 요원일 수도 있고 진짜 순수한 귀순 병사라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 쪽이다. 귀순 병사가 우리 측 GOP 소초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하니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 임무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처럼 귀순 병사가 걸어온 길을 따라 관련된 초소의 경계병들은 징계를 피할 길이 없으며 줄줄이 지휘자 문책까지 예고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보통 군 진지가 있는 곳은 '사계청소'라고 해서 시야에 걸리는 나무나 장애물 등을 수시로 제거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무성해지는 나무의 가지들을 베어버리거나 왕성하게 자라는 잡초 제거 작업도 열심히 한다. 겨울철 눈을 치우는 작업만큼이나 이 작업도 군인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과이다.
그런데 GOP 지역은 이 작업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근 거리에서 상대와 맞닿아 있고 잠시 방심하다간 큰 후환을 받게 되어서 그렇다. 철책과 철책 사이엔 발자국을 확인하도록 아예 아무것도 없는 모래밭이고 철책 하단엔 작은 돌도 끼어 놓아 누군가 건드린 흔적이 있는지 매일 조사한다. 또한, 적의 주요 예상 침투로에는 크레모어(클레이모어 지뢰)라는 부비트랩도 설치된 곳도 있다. 봄이면 화공작전이라고 하여 휴전선을 따라 산마다 일부러 거대한 산불을 일으킨다. 인간들의 싸움으로 자연이 훼손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DMZ 지역은 워낙 사람의 손이 덜 탄 지역으로 다른 지역보다 시야가 불리하고 조건이 안 좋다. 여름철에는 군화도 뚫는다는 커다랗고 시커먼 모기가 기승을 부리고 겨울철에는 보통 영하 20도에서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강추위가 매섭다. 이런 열악한 조건과 생명의 위협과 매서운 칼바람에 고생하는 군인들이 한순간의 방심으로 처벌을 받게 되어서 과거 DMZ 지역에 근무했던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왠지 가슴이 아프다.
GP에서 근무했던 시절에 선임에게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휴전선 지역은 전부 지금 같은 철책이 아니라 곳곳에 목책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가까운 GP는 밤만 되면 북한 병사들이 내려와 우리 군인들의 목을 베어 갔다고 하였다. 어느 GP에서는 전 소대원들의 귀가 잘려나갔다던 적도 있었는데 목을 베는 것도 귀찮아서 귀만 베어 갔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쪽도 바로 보복을 하였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이 없으니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그만큼 GP 근무에서 경계 임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새내기들에게 선임들이 겁을 주기 위한 이야기로도 보인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 그렇듯 사람은 맡고 있던 일과 환경에 익숙해지면 곧 흥미를 잃고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초기에 가졌던, 대남방송에 대응해서 이어지는 대북 방송의 시끄러운 소음과 바로 코앞에 있는 북한 병사를 바라보며 가졌던 긴장의 끈이 서서히 사라지면 근무를 서면서도 졸게 되고 반복되는 일과에 싫증을 느끼게도 된다.
군대 비속어에 '뺑이쳐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보니 무의미하게 군인들은 시간만 빨리 흘러 제대하기만을 학수고대하게 되고 본연의 임무인 경계 임무도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가끔 들리는 흉흉한 풍문에 의하면 어느 누가 월북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총기 사건도 빈번히 발생한다. 제대 날짜를 코앞에 둔 분대장 하사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병 후임에게 가지고 있던 총으로 발사한 사건도 있었고 이등병의 자살도 있었다. GP에서는 매일 아침 GP에서 GOP에 있는 철책의 통문까지 수색 정찰을 한다. GP까지 오는 도로의 안정성 확인과 간밤에 혹시 있었을지 모를 적의 침투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안이한 자세로 선임 하사가 지나가던 노루를 잡으려고 총을 발사한 적도 있었다. DMZ 내에서의 개인적 총기 사용은 불문곡직 영창 행이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다 지나간 20, 30년 전의 허술한 군대, 군대 말로 당나라 군대 시절 때의 이야기이다. GOP에서의 스트레스와 위험도가 그만큼 높기에 근무자들은 월급 외에 따로 위험수당을 받았다. 지금도 위험수당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군 기밀 보안에 걸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군대는 보안이 생명이다. 당시에도 유선으로 통화할 때는 항상 통신 보안을 외쳤다. 무선도 암호로 짜인 코드 하에 통신을 주고받는다. 그만큼 아군의 정보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아군의 정보가 노출되어 참혹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보안 유지는 필수이다. 지금 신세대 장병들이 무분별하게 영내로 스마트 폰을 반입하여 부대 내 기밀과 사진들을 외부로 알게 모르게 반출한다. 또한,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에 생각 없이 부대의 훈련 스케쥴도 공개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사실은 그만큼 군 기강의 해이와 허술한 보안 유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당나라 군대 시절에도 부내 내의 시설과 초소 등의 사진은 엄격하게 막았다. 걸리면 무조건 영창이었다. GP 교대 시에 휴가를 나올 때도 곳곳에 있는 검문소에서 헌병들이 소지품 검사를 하여 짜증이 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파국을 만들 수도 있기에 이런 사소한 불편은 감수해야만 한다.
전쟁이 일어난 지 6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남북이 휴전이라는 명분 아래 지금도 서로 대치하고 있다. 한시바삐 통일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아직은 기약이 없다. 격변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징병제인 한국에서 지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가는 것을 좋아할 젊은이는 없다. 그렇지만 누구랄 것 없이 청춘을 군대에서 바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고생하고 있는 다수 군인들의 노고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본연의 임무인 경계 임무를 소홀히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충실하게 근무를 설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 임무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더는 필요 없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음원제공 YouTube : Soldier Of Fortune - Deep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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