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신고식 - 조슈아 트리 캠핑 체험
2013. 3. 25. 20:44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역시 자연 앞에서 언제나 인간은 겸손함을 배운다. 준비없이 멋모르고 덤벼들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십여 년 전에 미국 땅에서 camping을 한 번 한 경험만을 가지고 이번에 대책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채 Joshua Tree로 불현듯 떠났다.
보통 국립 공원 camping site는 자리 잡기가 힘이 들기는 하지만 3월 들어서 Joshua Tree 내의 Black Rock camp ground는 예약을 받는다. 그러나 미리 서두르지 않으면 원하는 날짜에 제대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Joshua Tree 내에는 8개의 camp ground가 있는데 Black Rock과 Indian Cove 외에는 모두 first come first serve다.
한국에서 고시 준비를 하거나 소설을 쓰기 위해서 절에 들어가 생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심정으로 기분 전환의 계기도 삼을겸 겂도 없이 나홀로 camping에 도전해 보았다. 그러나 앞으로 닥쳐올 무시무시한 시련의 밤이 화려하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채.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식량과 물을 잔뜩 챙기고 소소한 것까지 빠뜨리지 않으려고 check list도 만들어서 두번 세번 확인한 후에 약간 들뜬 마음으로 출발하였지만 혹시 자리를 잡지못할까봐 공원 사무실에 미리 전화를 해서 가능한 site가 많은지도 이미 알아본 터였다.
Joshua Tree 국립공원 서쪽 입구로 들어섰다. 여기서 물어보니 그나마 경치가 수려하다는 Hidden Valley ground는 이미 자리가 꽉 찼다한다. 그래도 다른 곳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하여 서둘러 site를 찾아 나섰다.
올라가며 몇군데 둘러보니 사람들이 밀집하여 시끄럽기도 하고 여러모로 성에 차지않는다. 결국 가다가다 거의 마지막에 자리한 White Tank ground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도 자리잡지 못하면 남쪽 입구의 Cotto
n Wood로 내려가거나 어쩌면 돌아가야만 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자리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서 가장 규모가 작은 ground이다. 겨우 15개의 site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의외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주변도 조용하다. 왠지 마음에 든다. 나를 위해 예비된 자리가 꼭 있을듯 싶다. 1번 부터 비어있는 자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11번 까지 역시 자리가 없다.
결국 돌아가야만 하는가? 살짝 불안감이 엄습한다. 드디어 운명의 12번. 빙고! 하나님은 진실로 절실하게 원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 이곳에 나의 자리를 마련하고 계셨던 것이다. 12번 site. 이곳이 나의 자리가 되었다.
우선 이곳은 다른 곳보다 개인 공간이 두배는 널찍한 것이 아주 최적의 상태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넓고 시야도 탁 트인 것이 너무 마음에 든다. 더욱 흡족한 것은 다른 사이트와 비교적 조금 떨어져 있어 너무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테이블과 바베큐 그릴 그리고 fire place까지. 덤으로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남부럽지 않을 넓은 자연을 나의 정원으로 소유하게 되지 않았는가.
저녁을 지어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총총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니 별천지가 따로 없다. 나혼자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이 두고온 가족들에게 약간 미안한 기분도 든다. 고지에 위치한 사막 지대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직 시기가 일러서인지 모르겠지만 모기도 없고 귀찮은 파리도 별로 없고 달려드는 벌레도 없어 아주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 다만 밤에는 쌀쌀해서 조금 추위를 느낄뿐이었다.
기분 좋게 달콤한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 그 옛날 분명히 이곳을 누비며 기운차게 말달렸을 아메리칸 인디언의 호연지기를 가슴에 품고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호된 바람이 내가 잠든 텐트를 찢을듯이 소리도 요란하게 불어제낀다. 거친 바람이 머리를 때리는 듯하여 저절로 잠을 깼다. 주위는 아직도 어두운데 바람은 잦아들 생각없고 갈수록 거세만 간다. 점점 심해져 이내 텐트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볼품없이 이그러지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바람에 결국 텐트는 자꾸만 아래로 떠밀린다.
어찌할 수 없었다. 일어나 앉아 붙잡아 보기도 하고 앉아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없어 누워서 뻗대보기도 하였다. 그래도 어찌나 심한 황소같은 바람인지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살다살다 이런 혹독한 바람은 처음이었다. 어서 이 바람이 그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커다란 공포가 어둠 속에서 밀려든다. 텐트와 함께 내 몸이 곧 공중으로 떠오를 것만 같다. 오 주여! 첫 날부터 너무 심하신 것 아닌가요? 이 바람을 잠재워 주소서. 아니면 저를 잠들게 하소서.
몇 시간이 흘러도 기운 센 바람은 지칠 줄을 모른다. 나는 거의 탈진한 채 다만 부숴진 텐트를 챙겨 돌아가지 않게만 해달라고 달리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두 팔을 하늘로 올리고 기도하던 그 옛날 여호수아의 형상을 한 조슈아 트리가 저멀리 산 정상 위에서 이곳을 웃음지며 굽어보는 듯하다. 어서 빨리 아침 해가 떠오르기를.
Joshua Tree White Tank campground에서 혹독한 첫날 신고식을 치루고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겸허한 자세로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가고 또다른 날엔 어떤 일이 펼쳐질지 자못 궁금해하며 경황없지만 생생한 사진을 이제야 숨돌리고 몇 장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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