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3. 07:00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이 심각하게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수행해야 할 책임과 소임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가 무겁다고 던져버리고 달아날 수는 없다. 삶이란 사는 동안에 느끼는 자신의 가치이지 사는 것을 벗어버리고서야 삶이라 할 수 없다.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이다'는 말로 자신의 책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시작한다. 인생은 과연 가벼운 것일까? 아니면 무거운 것일까? 무거운 삶은 진중하고 진실해 보이지만 웃음과 재미가 없고 반대로 가벼운 삶은 재미는 있지만, 진지함이 없고 경솔해 보인다. 이 세상의 삶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으로만 양분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 인생이 얼마나 가벼울 수 있는지를 도처에 드러내고 있다.
새삼스레 한국에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단어가 사회 곳곳에서 무차별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의 인식과 행동의 가벼움에 마침 이처럼 딱 부러지게 걸맞은 단어가 등장하였으니 곳곳에서 힐난조로 이 말이 횡행하는 모양이다.
새털처럼 가벼운 '새누리당'이 등장하고 수감 중인 모 의원을 응원한다는 여성들의 답지하는 가슴 사진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니 가히 세상은 날아오르다 못해 두둥실 떠다닐 판이다. 현직 판사의 '가카의 빅엿'이 등장하고 민주당 공약으론 고졸 청년에게 1,200만 원씩 지급하며 사병으로 군대를 제대하면 630만 원의 목돈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새누리당은 전액 무상보육에다 사병 월급으로 40만 원이 지급된다. 정당의 공약대로만 된다면 빠르게 발전하는 IT산업만큼이나 한국 사회도 무한발전하는 셈이다.
밀란 쿤데라의 분류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다분히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데 대중의 무수한 시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이 있고 다수의 친한 사람들의 시선 없이는 살 수 없는 삶도 있으며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 사는 사람과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삶의 네 가지 범주를 제시했다.
이창수라는 시인이 있다. 그의 시에는 풍자와 해학이 녹아 있다. 이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인간들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말한 '이 세상은 무대이며 모든 남자와 여자는 배우이다. 그들은 각자의 배역에 쫓아서 등장했다가는 퇴장하지만, 사람은 한 평생 여러 가지 역을 담당한다'는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를 태운 사람이 뒷집에 산다. 두/고두고 동네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그 사람이 봄날/죽었다. 마당에서 술 마시고 윳을 놓던 사람들 모두 웃음 참/느라 죽을 지경이다. (봄밤 전문)
인간 모두에게는 각자의 무대가 있다. 자신만의 길이 있고 또 자신에게 맞는 배역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언제나 관객이 바라보는 전면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무대의 후면에서 배역을 연습하기도 하고 뒤처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이런 무대에서는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서 무수한 배역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엑스트라가 되기도 하며 어떤 때는 관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와 주차장 영감이 싸웠다/영감이 트랜스젠더에게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부른 게 발단이었다/트랜스젠더는 차라리 년이라고 불러주었으면/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는다고/싸움을 구경하는 미국인들에게 호소했다/미국인들이 년과 놈의 차이를 이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트랜스젠더의 호소에 환호로 답했다/호소의 힘은 언어 밖에 있다/광산의 고싸움이나/청도의 소싸움처럼/이태원에도 년과 놈이란 호칭 때문에/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있다(남산 위의 저 소나무 1중 일부)
밀란 쿤데라의 책 속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상징하는 여러 주인공이 등장한다. 또한, 여러 이야기가 조각조각 나누어졌다가 통합되고 문장은 은유와 반복으로 점철되어 여운을 남긴다. 그렇기에 읽는 이의 감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소지도 있다. 통찰을 계속하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하여 그의 독특한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은 연극과 같고 나아가 영화보다도 더 영화적인 것은 아닐까.
(음원제공 YouTube : 김종찬 -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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