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1. 16:56ㆍ♧- 사는 이야기 -♧/삶을 말하다
블로그는 펜으로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의 드러난 작품과도 같다. 사각의 흰 글꼴 상자 위에 마음 가는 데로 손을 들어 선이 굵고 진하게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열정을 쏟아낼 때도 있고 때로는 섬세하고 흔들리는 자신의 감정에 어쩔 수 없이 착 가라앉아 빈손만 놀리고 있기도 하다. 다만 처음부터 자신의 모습을 확정하고 밑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 뿐이다.
지난 1년간을 돌아보니 블로그는 마치 나에게는 고향과도 같았다. 먼 여행을 떠나도 언제나 그립고 돌아오면 친숙하고 푸근한 안식처와 같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생활의 활력을 주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어릴 적 아무도 몰래 다락방에 올라가 오래된 잡동사니 물건을 뒤적이며 자신만의 은밀한 시간을 즐기다 지루해지면 누워서 좁다란 창문으로 바라뵈던 하늘이 아주 진한 파란 색을 띠었듯 블로그는 나에게 희망처럼 언제나 파란색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빈 공간 위에 그리고 또 그린다. 어제는 오늘과 다르고 내일은 또 오늘과 다르다.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을 비우고 자신만의 고요한 세계에 몰입하기도 하고 끝 간데없이 깊은 침잠에 빠져들기도 한다. 바람도 잔잔한 맑은 호수 위의 흔들리지 않는 호수 면처럼 평정심을 유지하면 스스로 그려진 자신의 모습에 때론 만족하기도 한다. 거미줄 늘이듯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약한 감정에 때론 좌절하기도 하지만.
블로그는 거울이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만족스럽지 못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뿐이다. 서정주는 자신의 자화상을 이렇게 글로 읊었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블로그는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연속선 상에 있다. 조각난 글들이 서로 아귀가 맞고 맞물려져 서서히 형태를 드러낸다. 애초에 의도하지 않은 제각각 따로따로 떨어진 글들이 악보 위의 그려진 음표처럼 어느덧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고 선율이 되어 듣는 이를 찾아 공간 위를 떠돈다.
블로그는 소통의 창이다. 많은 살아있는 삶들과 만난다.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창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만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알아가며 위안을 찾는다. 그러나 길 위에서의 만남이 마냥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그려왔던 이미지가 허상이듯 이유 없이 박대하는 변한 모습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상대에게 잘못한 점을 찾지 못할 때는 야속하고 허무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기다려주고 걱정해주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래서 이렇게 지금도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
'♧- 사는 이야기 -♧ > 삶을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땅의 비겁한 남자들에게 악쓰고 싶은 밤 (0) | 2012.10.21 |
---|---|
프시케 신화에 얽힌 비밀 (0) | 2012.10.21 |
아이폰에 링톤 무료로 넣고 신나게 즐기는 방법 (0) | 2012.10.21 |
평범한 시민으로 되돌아간 미테랑 대통령 (0) | 2012.10.21 |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 본다! (0) | 2012.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