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1887-1986)]는 미국의 대표적인 여류 화가이다.
지난 200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녀의 작품 '붉은 아네모네와 칼라'는 620만 달러(당시 62억원)에 거래되어 여성 화가로서는 단연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그녀의 집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자 예약 대기자 명단이 1년치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Red Canna, 1923
그녀의 삶을 둘러싼 스캔들과 세간의 호기심은 과히 폭발적이었다. 드라마틱했던 삶을 산 그녀는 28살 때인 1915년 실험적인 작품 전시에 적극적이었던 291화랑의 소유자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1864-1946)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스티글리츠는 화랑주일뿐 아니라 당시 미국의 가장 유명한 사진작가로 뉴욕의 예술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부남이었다. 스티글리츠는 1918년부터 오키프와 연인으로 지내며 오키프를 모델로 수 없이 많은 누드 사진을 찍었다. 당시 오키프가 그렸던 '연작I'과 '음악-분홍과 파랑, 1번' 그리고 '음악-분홍과 파랑, 2번' 등은 성기를 연상시키는 오키프 특유의 꽃 그림이다.
Music - Pink and Blue No. 2, 1919
사진의 역사에서 ‘미국 근대사진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스티글리츠는 1902년 ‘사진 분리파'를 결성한 뒤 사진을 회화에 버금가는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미국의 신예 사진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유럽의 앞선 예술세계를 뉴욕에 소개하고 있었다. 반면 ‘최초의 여류 페미니즘 화가’라고 부를 만한 오키프는 최근에 들어서야 회화사에서 주목받고 있다. 오키프가 미국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하는 데에는 그녀의 연인이자 남편이었던 스티글리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 결국 1924년 결혼했지만 스티글리츠는 도로시 노먼이라는 유부녀와 1927년부터 눈이 맞았다. 오키프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Alfred Stieglitz, Georgia O’Keeffe, Squeezing Breasts, 1918
이후 그녀는 1945년 뉴멕시코주로 홀로 이주해 작업에만 매달렸다. 나이가 든 오키프의 곁에는 젊은 남자인 존 해밀턴이 있었다. 오키프는 자신이 85살에 만난 26살의 존 해밀턴에 대해 스스로 연인이라고 생각했고 해밀턴이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지만 오키프는 모든 재산을 해밀턴에게 상속했다.
1915년 자기만의 스타일을 발전시킨 이후로 오키프는 동일한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른 색깔들을 이용하여 복합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그녀의 작품 소재는 대부분 관능과 대담하게 드러낸 ‘여성의 성(性)’이었다. 그녀의 ‘꽃그림'은 여성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형상화하여 당시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오키프의 추상화는 미국 내에서 그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도 진보적이었다. 그녀는 시각적 이미지의 리드미컬한 구성을 통하여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적인 이미지로 창출하고자 하였다.
Lake George,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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