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2회]

2012. 10. 13. 15:00☆- 문학과 창작 -☆/소설이 걷다

 

훈아! 이리 와 봐라.

내가 돌아와 대문을 여는 소리에 인기척을 느낀, 방 안에 계신 아버지가 나의 발소리를 따라 건조하고 힘없는 소리로 나를 불러세웠다.

. 아버지! 그러세요?”

국수 사올래?

또 국수 드시게요?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오실 시간인데요.

너하고 같이 먹으려고 그런다.”

아버지! 아버진 국수가 그렇게 맛있어요?”

글쎄다…, 국수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란다.”

그럼, 무엇 때문에 먹는데요?”

우리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위해서 그런다.”

“…”

아버지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라면 약간 고들고들한 쌀밥과 고기 반찬에 식사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는 그래도 밥이 좋은데…”

허허.”

아버지는 허탈한 웃음만을 지으셨다.

아무튼, 빨리 올라가서 국수 사 오너라.

. 알았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바지 주머니에서 1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주시고 돌아서서 힘겨운 기침을 내뱉는다. 오늘따라 돌아서서 기침을 내지르는 아버지의 굽은 뒷모습이 서글프게 보였다. 아버지는 최근 들어 부쩍 심하게 마른기침을 많이 하셨다. 어떤 날에는 기침이 심한 나머지 붉은 핏덩어리를 방바닥에 쏟아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볼이 들어가 무척 수척해 보이시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광대뼈만이 심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버지가 어떻게 아픈지 모른다. 다만, 허공을 헤매는 아버지의 초점 없는 눈길만이 이따금 애처롭다고 느낄 뿐이었다. 눈가에서 눈물 방울이 찔끔 나오려다 들어갔다. 그곳에 서서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눈물이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아 대문으로 달려갔다. 그때 마침 대문을 들어서는 큰형의 어디 가느냐는 물음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렸다.

 

철길 아래쪽을 돌아 백사장까지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비탈길이 만들어졌다. 누군지 모르게 밟고 밟고 지나간 수많은 자국. 마침내 다져지고 다져져 길이 되어버린 이 길은 백사장까지 내려가는 지름길이었다. 언제, 누가 발자국을 남기었을까 따지는 것은 이제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가 매일 같이 길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집에서 강으로, 강에서 집으로 수없이 다닌다는 사실 뿐이다. 오는 날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날을, 시절 무료한 우리는 아주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철길 위에서 곧바로 보이는 철교를 향해 강가에서 주어온 차돌을 집어던지거나 아니면 끝없이 가로로 놓인 침목을 밟으며 껑충껑충 뛰어보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주로 우리 또래보다 나이 많은 형들이 하였지만, 선로 위를 가로로 누워 있다 기차가 올 때쯤 피하는 담력 놀이를 한다거나 하며 보냈다. 그마저도 싫증이 나면 우리는 백사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은 맑은 사이로 반짝거리는 곱고 모래가 가득했고 물에 잠긴 발등 위로 강물이 때론 흔들리며 넘실거렸다. 철길 아래 백사장은 우리들의 놀이터요 또한, 다른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는, 거친 세상의 질곡이기도 하였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전쟁 중에 한강 다리가 폭파되고 , 수많은 피난민이 이 강을 건너 남쪽으로 남하하기 위해서 조그만 쪽배에 그들의 피곤한 몸을 구겨 싣고 생사의 기로에서 절망했고 그나마 쪽배도 구할 없던 대다수 피난민은 강물로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헤엄치다 생명을 달리한 곳이기도 하였다. 강을 사이로 피차의 경계는 삶의 길이요 때론 죽음의 길이 되기도 했던 고난스러운 요단강이었다. 나는 그런 의미들을 미처 헤아릴 없었지만, 흐르는 강물이 마냥 잔잔하기만 것도 아니고 또한 모든 것을 포용해주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느끼고 있었다.

 

해가 떠올라 아침을 먹고 나면 딱히 데도 없는 우리는 철길이 있는 이곳으로 나왔다. 팔월의 태양이 마냥 뜨겁던 그날도 터울의 누나랑, 동네 조무래기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우리는 철길 위에서 한동안 놀다가 너무 더워서 백사장으로 내려왔다. 그날따라 백사장은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덥기만 하였다. 백사장에도 더위를 피할만한 그늘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강물에서 물장구도 치고 멱도 감으며 놀다 보면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지쳐서 백사장에서 모래찜질하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얼마나 놀았을까? 같이 놀던 누나가 보였다. 나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누나를 찾았는데, 누나는 백사장에서 철길로 올라가는 길목에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없는 두려움을 안고서 달음에 누나에게 달려갔다.

누야! 그래? 누야! 그러는 거야? 어디 아파?

누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미 게슴츠레하게 치켜뜬 사위 위로 이마가 펄펄 끓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땀을 흘리는 창백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누나의 몸은 마치 물속에서 잡혀 올라와 위에 내팽개쳐진 마리 물고기 같았. 벌름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나는 멀리 떨어져 있던 친구들을 불렀다. 몰려온 무리 중에 친구가 말했다.

너희 누나가 아마도 더위 먹은갑다.

더위 먹었다고? 그럼 어찌해야 하는데?

글쎄, 나도 모르겠다.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봐라.”

집으로 가는 도중에 누나가 죽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정신없이 손바닥으로 물을 떠서 먹여보기도 하였고, 늘어진 누나의 팔다리도 주물러 보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누나가 약간 정신이 드는듯하였다.

누야. 괜찮나? 이제 정신이 드나?

괜찮아.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파.

그럼. 집에 가자. 누야! 걸을 있겠나?

. 그래.
누나는 힘없이 말을 이었다. 나는 누나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부터 누나는 설사하였다. 먹지도 못하고 나중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바로 누운 자리에다 설사를 계속 했다. 어른들은 더위 병이라고 했다. 누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어른들이 답답하기만 하였다. 누나는 삼 일을 내리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삼 일째 되는 날에는 헛소리까지 하였다. 고열로 지치고 설사와 구토로 거의 반쪽이 누나는 가녀린 손을 허공에 힘없이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훈아. 철길 가자.

울림 없는 메마른 누나의 음성이 애처롭기만 하였다.

훈아. 그곳은 위험해. 가지마.”

훈아. 강물을 . 매우 예쁘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