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3. 13:30ㆍ☆- 문학과 창작 -☆/소설이 걷다
매일 죽는 남자
어른이 읽는 동화 - 옆집 아저씨가 들려준 별 이야기 같지 않은 이야기
삐뚤이는 변태이자 성도착자였습니다. 지금이야 그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져 어린이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신문 지상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지만, 그 시절이야 그런 일이 워낙 드문데다가 그는 그런 의미도 모르는 꼬마였습니다. 그가 눈을 감은 채로 잠시 있자니 코앞에서 이상야릇한 냄새도 나고 무엇인가 커다란 물체가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낌새를 느꼈습니다. 살짝 눈을 떠보니 삐뚤이가 입가에 더러운 미소를 띠고 자신의 물건을 바지 틈새로 드러내놓고서는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화들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 도망쳤습니다. 너무도 황급히 도망치다가 발부리에 돌멩이가 걸리면서 그는 땅바닥으로 철퍼덕 넘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삐뚤이가 쫓아와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습니다.
삐뚤이의 완력에 멱살을 잡힌 채로 그는 양 뺨에서 불이 나게 그의 의지와 달리 이쪽저쪽으로 수십 차례 고개가 돌아갔고 그는 이유도 모르고 삐뚤이의 무자비한 폭력에 넉아웃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후로 먼 거리에서도 삐뚤이의 그림자만 보여도 줄행랑치기 바빴습니다. 괴로운 그의 심정을 그 누가 알아줄까요? 발설하면 그와 그의 가족도 해코지한다는 삐뚤이의 협박에 그는 가족에게도 이 사실을 비밀로 하였습니다. 그는 이일로 그만 대인 기피증까지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의 수난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도 연탄가스를 2번이나 더 마시고 죽다 살아난 덕으로 총명했던 그의 머릿속이 아마도 잿빛 가스로 가득 차버렸는지 점점 총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빨빨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그의 어릴 적 활발했던 성품도 점점 소심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천만다행이라 할까요. 산꼭대기 집에서 1년여를 살다가 어머니의 결단으로 아랫동네에 위치한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가져보는 우리 집이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어머니는 3마리나 구해오셨습니다. 강아지는 쑥쑥 자라 어미 개가 되었고 또 강아지도 낳아서 1년 후에는 자그마치 개 식구가 12마리로 불었습니다.
'행복의 순간은 잠시요 고통의 순간은 길고도 오래다.'라는 말처럼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마도 3~4년 정도였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들어갔을 때 이미 그는 직감하였습니다. 그의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결코 순조롭고 평탄치는 않으리라는 것을. 어릴 때 살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관계로 뺑뺑이를 돌려 들어간 고등학교가 하고많은 좋은 학교, 예를 들어 서울, 경복, 배재, 중앙 등을 차례로 비켜가고 당시 깡패학교로 불리던 삭막한 학교로 배정받았으니까요. 더구나 어찌어찌 들어간 신문 반이란 것이 그에겐 아주 요상한 모임이었습니다.
단합대회를 핑계로 무시로 드나들던 선배가 그에게 소위 말하는 의식화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미 가스로 채워져 하얘진 그의 머릿속을 무던히도 많은 책으로 씻어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문학 서적 위주로 시작하였습니다.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유리알 유희'. '이방인', '카라마조프 형제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달과 6펜스' 등등. 그에게 먼저 책을 읽게 하고 나중에 만나 서로 내용을 토론하고 그리고 그의 감상을 듣고 나서 선배의 생각을 그에게 서서히 주입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몰랐던 많은 양서를 알게 되었고 나름대로 가치관과 새로운 시각을 정립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대견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E.H. Car의 '역사란 무엇인가'나 이영희 교수의 '8억 인과의 대화', '자유인' 그리고 해방신학이나 전태일로 넘어가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투사가 되어 갔습니다. 마침 오랫동안 나라를 이끌던 각하가 서거하면서 대한민국은 갑자기 혼란스러운 자유가 도래했습니다. 김동길 교수의 누님이던 김옥길 이대 총장이 옛날 문교부 장관이 되면서 한꺼번에 여러 시책을 쏟아내다 보니 고등학교까지 자유의 물결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의도했던 학원 자유화의 바람과는 반대로 서울 시내의 여러 학교가 데모로 몸살을 앓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선두에 서서 데모를 주동했습니다. 수업거부를 하고 단상에서 학생들의 독려를 위한 단지도 기세 좋게 거행하였습니다. 이미 학교마다 교문 밖에는 전경들이 진 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였습니다. 약간 경사진 교문 아래로 학생들이 물밀 듯이 내려갔는데 당시 학생지도를 맡고 있던 반인반수의 미확인 괴물이란 뜻의 별명을 얻고 있는 사스콰치 선생이 단독으로 곡괭이 자루를 휘두르며 우리를 막고 있다가 전면에 선 그와 뜻하지 않게 조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계속됩니다.
(음원제공 YouTube : 작은 연못 - 양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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