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1회]

2012. 10. 13. 14:30☆- 문학과 창작 -☆/소설이 걷다

국수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달빛산책

 

    시지프스는 산 밑자락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돌을 올려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존재이다. 그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그 돌을 산 정상까지 간신히 굴려서 올린다. 하지만, 그가 힘들여 올린 돌은 정상에 다다르자마자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 돌은 결코,
산 위에 올려진 채 고정되어 있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시지프스는 다시
산밑으로 내려가서 먼저와 마찬가지로 돌을 올리고자 애를 쓴다. 물론 결과는 마찬가지다.
돌은 다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스는 다시 돌을 올리기 위해 산밑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결코, 산 위에 돌을 올려놓으려는 그의 소망은 달성되지 않는다. 시지프스의 노력은 항상
무위(無爲)로 돌아간다.

-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 중에서

 

 

오늘은 날도 흐리고 찌뿌듯한 게 왠지 국수 생각이 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다시마 국물을 우려내고 그 국물에 하얀 면발의 삶은 국수를 넣어 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조금 끓여 먹으면 그 맛이란, 다른 음식에 비할 바 아니다. 더구나 별다른 반찬이 없이 겉절이 가지만 있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우울한 기분이 드는 날이나 흐린 날씨에도 나는 국수를 찾는다.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리려고 국수를 먹는 것인지 아니면 국수를 먹게 되어서 어쩌면 우울해지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날이 흐리면 허리와 다리가 쑤시는 신경통 환자처럼 나도 흐린 날에는 저절로 반응하는 우울한 조건 반사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하면 의식을 집행하는 제사장의 심정으로 빠뜨리지 않고 국수를 먹는 것으로 허허로운 위장의 욕구를 달랜다.

집안으로 들어서며 아내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여보! 국수 있지?

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아내의 표정이 마뜩찮다.

국수 떨어졌는데

?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거야. 오늘은 국수 생각이 간절한데. ”

당신은 그렇게 국수만 좋아해요? 국수 공장을 차릴 수도 없고 . 지금 김치찌개 끓였는데, 그냥 찌개에다 먹읍시다. ? 빨리 씻고 와요. 얼른 차려 놓을게요.”

아내 성격을 아는지라, 내가 약간 주저하는 사이에 자신이 그만 결정을 내려버리고는 말문을 막아 버렸다. 나는 입에 착착 감기는 국수 맛의 여운을 머릿속으로만 되새기면서, 차라리 이럴 알았으면 동네 초입에 있는 단골 월남 국숫집에서 월남 국수라도 사올 걸 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마침 퇴근길에 동네 어귀를 돌아오는데 주변으로 퍼져 나오던 고기 국물 우리던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걸려 있는 듯하여 더욱 국수 생각을 부채질했다. 오늘따라 먹고 싶던 국수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비라도 듯한 흐린 날씨는 더욱더 후텁지근하게 느껴지며 괜스레 목구멍까지 욕지기가 올라왔다. 욕실 문을 여니 여기저기 흐트러진 실내화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달에 아내 커플 신발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사 들고 , 빨간색 바탕에 초록 줄무늬가 어우러진 실내화들은 맥없이 욕실 바닥에 널려 있다. 내가 볼 때마다 신발 똑바로 벗어 놓으라고 아내에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신발이 흐트러져 있으면 정신이 산만해지는 듯하다. 똑바로 정돈되어 있어야 비로소 마음도 평안해진다. 그래서 신발이 흐트러져 있으면 보는 이도 산만해지고, 집안의 복도 달아난다고 잔소리를 해도 아내 귓전으로 듣는 마는 그때뿐이다.

신으려고 할 때마다 불편하잖아.

나는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선 열이 솟는 듯하였다. 수도꼭지를 틀고서 찬물로 거푸 세수를 하였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세면대 위쪽에 달린 거울에는 마르고 거친, 그러나 왠지 낯익은 중년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버지가 보인다. 메마르고 병약한 아버지의 얼굴 위로, 미처 닦아 내지 못한 물방울이 입술을 돌아 아래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우리는 철길로 나왔다. 아침을 먹자마자 밖으로 나온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철길로 향했다. 얕은 둔덕 아래로 한강이 흐르고, 가장자리를 따라 철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옆에 있던 민수 나를 보고 웃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보이면서 커다란 대못 5개를 보여주었다. 민수는 어젯밤 자신의 형이 가져다주었다고 자랑을 하였다. 우리는 신이 나서 우리가 자주 놀던 철길로 올라가 이곳으로 기차가 지나갈 시간을 가만히 헤아려 보았다. 이제 기차가 지나갈 것이다. 선로는 아직 아침 무렵이지만 8월의 더위를 안고 벌써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주변 지대보다 약간 봉곳하게 솟은, 곧게 뻗은 철길을 가로질러 시야가 터진 앞쪽으론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백사장 끝 자락엔 강물이 휘돌아 거센 급물살을 이루는 자리 위로 전쟁통에 폭파되었다가 서울 수복 이후 복구되었다는 철교가 있다. 철교는 지금은 자취도 없는 금호 나루의 잔상을 돌아보며, 시절 애달팠던 사람들의 뼈아픈 통곡 소리도 흘리듯 다만 자리에 무심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때 민수 슬며시 나에게 못을 2개나 건넸다.

훈아! 이제 기차 시간 됐다.”

! 못들이 무지하게 크고 좋은데, 고맙다. 민수야. 3 지남철 만들 거야?

그럼! 이래 봬도 못들이 미제야.

민수가 우쭐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먹거렸다.

그래? 어쩐지 크고 좋아 보이더라니. 지남철이 되면 쇳가루도 많이 달라붙겠는데. 그지?

별다른 장난감이 없던 시절에 지남철은 우리에겐 아주 특별한 장난감이었다. 지남철을 들고서 모래 위로 훑으면 숨겨진 쇠붙이나 동전들이 척척 달라붙었다. 기차가 선로 위에 올려진 커다란 대못을 누르고 지나가면 신기하게도 대못은 지남철로 변해 있었다. 그때 아스라이 철교 끝에서 기적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갑자기 바빠졌다. 선로 위쪽에 제법 평평한 곳을 찾아서 대못을 놓아야만 한다. 기차가 지나갈 때의 반동으로 흔들려서 미리 떨어지면 된다. 선로는 기차가 자주 지나다니면서 마치, 날이 선 칼날처럼 길이 들어 아주 반들반들하였다. 못을 잘못 올려놓으면 기차가 오기도 전에 선로에서 흔들려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만사휴의로 끝난다. 우리는 대못을 올려놓은 다음 기차가 철교를 건너 이곳으로 곧바로 달려올 때쯤 멀찍이 물러났다. 커다란 기차 바퀴가 참을 없는 굉음을 내며 선로 위를 미친 듯이 굴러왔다. 지켜보는 우리들의 몸을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산산이 가루로 내어 버릴 듯하다. 가까이서 들으면 천둥소리와도 같은, 바퀴가 선로에 긁히는 거친 소음과 함께 기차는 순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멀찍하게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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